‘그저 빛’ 서울E 정정용 감독 “더 치열할 승격 전쟁, ‘빅4’ 뚫어야”

입력 2020-12-17 06:00 수정 2020-12-17 06:00
서울 이랜드 정정용 감독이 16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 구단 사무실 입구에서 인터뷰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프로축구 K리그2 서울 이랜드(이하 서울E)의 정정용(51) 감독은 올해 2부 리그에서 가장 많은 언론 인터뷰를 한 감독일 듯하다. 그는 지난해 20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며 20세 이하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 남자축구 사상 첫 세계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남긴 뒤 프로 감독 데뷔를 선언했다. 해외 팀을 포함한 유수 구단의 구애를 뿌리치고 선택한 팀은 지난 시즌 K리그2 꼴찌 서울E였다. 의외의 선택 탓에 그와 서울E의 행보에 세간의 시선이 집중됐다. 부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팀을 올 시즌 승격 준플레이오프(PO) 코앞까지 데려다놓으며 능력을 증명했다.

정 감독은 국민일보와 만난 16일에도 구단 점퍼를 입은 채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구단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미리 와있던 코치진들과 한 차례 회의를 마치고 난 뒤였다. 전지훈련 전 며칠 새 쏟아진 인터뷰 요청 탓에 피로할 법도 했지만 정 감독은 “프로팀 감독이 해야 하는 역할은 선수 지도만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 1년 동안 선수단만이 아닌, 구단 전체와 팬들로부터 주어진 책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성장한 ‘프로 감독’의 모습이었다.

승격 문턱까지 이르렀던 ‘데뷔 시즌’

서울E는 지난 시즌까지 우울했다. 2014년 창단 뒤 팀을 지도한 인물은 감독 대행까지 포함해 정 감독 부임 전까지 총 7명이었다. 첫 시즌 리그 4위를 달성했지만 이후 성적이 계속 추락, 2018년과 지난해에는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 실점은 리그 36경기에서 71골, 즉 경기당 2골씩은 내주고 시합을 하는 지경이었다. 이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정 감독의 부임 당시에도 서울E가 당장 성적을 낼 것이란 예상은 많지 않았다. 팀이 반전할 계기를 만드는 것부터가 급선무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 감독은 시즌 최종전에 이르러 팀을 승격 문턱에 데려다 놓았다. 전남 드래곤즈와의 최종전에서 1대1 무승부를 거두며 골득실차로 준PO 진출에 실패했지만 그 자체가 팀에게는 큰 성과였다. 승률은 14% 이하였던 지난 시즌보다 한참 오른 4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정 감독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전술적 완성도에는 60~70% 정도 이르렀다”면서 “수비만 놓고 따지면 K리그2에서도 잘하는 수준이 됐지만 다음 시즌에는 공격적인 완성도를 끌어내야 한다. 더 공격적으로, 이길 수 있는 축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대표팀과 프로팀 감독은 물론 차이가 많다. 해당 연령대 가장 잘하는 선수를 뽑을 수 있는 대표팀과 개성도 실력도 제각각인 선수가 모이는 프로팀 운영은 딴판일 수밖에 없다. 정 감독은 “대표팀은 같은 연령대 선수가 대회마다 한 목표를 가진 조직이라 단합이 쉽고 동기부여도 잘 된다”면서 “반면 프로팀은 선수들 간 선후배가 있고 실력도 세대도 다 제각각이다. 같은 얘기를 해도 개인마다 모두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요한 건 지도자와 선수 사이 일대일로 쌓이는 신뢰”라면서 “내 진정성을 보여주고 이 사람에게 배우면 성장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그게 선장의 몫”라고 덧붙였다.

감독으로서 시즌 운영 관련해 느낀 점도 많다. 개막 뒤 3무를 거두던 중 빡빡한 일정을 고려, 선발 교체를 대거 시도하다 FC 안양에 당한 1패가 치명적이었다. 역시 무승 중이던 상대에게 내준 승리라 더 뼈아팠다. 정 감독은 “나중에 안양 김형열 감독이 우스갯소리로 ‘너무 우습게 본 것 아니냐’라고도 했다. 주변에서도 베스트멤버로 나갔으면 흐름을 타지 않았겠냐고 말했다”고 복기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그 경기만 잡았어도 PO에 진출했겠지만 그 선택 역시 이기려고 한 것이라 후회는 없다”면서 “다음 시즌에는 결과에 더 무게를 싣는 팀 컨셉을 잡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반 다진 올 시즌…내년엔 성적 낸다”

서울 이랜드 정정용 감독이 16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 구단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정 감독의 지도 아래 서울E 선수단은 이번 시즌 가파르게 성장했다. 특히 정 감독이 첫 외국인 선수로 영입했던 공격수 레안드로는 1부 리그에서도 탐내는 공격수로 발돋움해 팀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뼈아픈 구석도 있다. 임대로 데려왔던 7명 중 울산 현대 소속의 이상민 등 주전으로 활약한 대부분의 선수가 원소속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서다. 정 감독으로서는 여태껏 다진 조직의 큰 부분을 포기하고 다시 가다듬어야 하는 셈이다. 그는 “그런 점이 지도자로서 뼈아픈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정 감독은 “해당 선수들을 데려오면서도 ‘난 너희를 임대선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 우리 선수고 너희가 많이 배우고 자라는 것만 해도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물론 성장한 선수들이 떠난다는 건 아쉽지만 남은 선수들은 다음 시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익혔을 것”이라면서 “좀 더딜 수는 있겠지만 그 기반을 바탕으로 리빌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주말에도 지역에 내려가 대학 축구 선수들을 직접 관찰하고 왔다. 그동안 쌓아놓은 유망주들의 정보를 가다듬는 한편 새 자원을 발굴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코로나19 때문에 늦어지는 K리그2 이적시장이 걸림돌이다. 정 감독은 “임대 와있는 선수 중 남아있고 싶다는 선수도 있다”면서 “물론 다른 구단도 사정은 마찬가지겠지만 아직 조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일정이 예년보다 늦춰지면서 이적시장 ‘큰손’인 1부 대형구단들이 아직 이적 작업을 마치지 못했고,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계산을 해야 하는 서울E 등 중소구단 역시 어떤 선수를 데려올지 청사진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어려운 와중에도 최근 서울E는 대구 FC로부터 미드필더 김선민과 20세 이하 대표팀 주장 출신 측면 자원 황태현 영입을 거의 확정지었다. 정 감독은 “아무래도 대구처럼 비슷한 시스템 아래에서 같은 역할을 맡아본 선수를 데려오는 게 리스크가 적다고 판단했다”면서 “단단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역습을 펼치는 우리 팀 컨셉에서 김선민은 금방 녹아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팀 제자 황태현은 22세 이하 출전규정에 해당할 뿐 아니라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정 감독이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을 만큼 믿음이 있는 사이다.

정 감독은 이번 시즌보다 2년 차인 내년 시즌 K리그2 승격 경쟁이 더 치열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고지를 옮겨 재창단한 김천 상무, 대전 하나시티즌, 만만찮았던 경남 FC, 한 시즌 만에 돌아온 부산 아이파크까지가 경계해야 할 ‘빅4’라는 예상이다. 정 감독은 “이번 시즌은 코로나19로 경기가 27라운드로 축소돼 우리처럼 선수단 두께가 얇은 팀들도 해볼 만한 구석이 있었다”면서 “내년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여튼 간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까지 극복하라고 제가 팀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빠 염색해”에 포기한 백발 신사
서울 이랜드 정정용 감독이 16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 구단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현재 정 감독은 구단이 마련한 경기도 하남 거처에서 ‘기러기 아빠’로 지낸다. 아내와 초등학생 두 자녀는 고향 대구에서 산다. 매일 자녀들과 통화를 하지만 보고 싶은 건 서로 어쩔 수 없다. 그는 시즌 내내 매주 경기가 끝날 때마다 1박으로, 때로는 당일치기로 대구를 다녀갔다. “아빠 몇 시에 가?”라며 매달리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면서 정 감독은 웃었다. 경기에 져서 낙담한 모습을 자녀에게 보이기 싫을 때면 일부러 내려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는 그런 남편이 안쓰러웠는지 “내가 공무원이라 살림은 괜찮으니 관둬도 된다”며 농담으로 위로하기도 했다.

프로 감독을 하는 다른 지도자들처럼 정 감독도 1년 사이 머리에 흰머리가 많아졌다. 물론 매 경기 결과물을 내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이참에 백발을 그대로 둬서 멋을 부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이들의 ’삼고초려’에 마음을 접었다. 정 감독은 “아들딸이 ‘아빠 염색해~’라고 하는 통에 결국 염색을 했다. 백발 잘 기르면 멋있을 거라고 해도 나중에 또 번갈아 가면서 염색하라고 하더라”면서 “그렇게 염색을 해도 또 금방 흰머리가 난다. 주름도 많아졌다”면서 웃었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팬이던 아들은 요즘 아빠를 도와주려고 어린 나이에 축구 스카우팅 리포트를 사서 뒤진다.

가족들에게는 감독 일을 하며 미안했던 기억이 있다. 과거 2018년 툴롱컵 대회에 19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했을 때다. 당시 상대인 프랑스, 스코틀랜드 등은 21세 팀에 기본 대표팀 전력에서도 한국보다 한참 앞섰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정 감독은 거센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정 감독은 “그때 말은 안했지만 욕을 엄청나게 먹으면서 가족들도 소위 ‘멘붕’이 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때를 생각해보면 욕 얻어먹지 않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프로팀 감독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에 더해 욕까지 먹으면 가족들도 감당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온 이유, 그리고 도약

사실 정 감독은 서울E의 전신인 이랜드 푸마의 ‘레전드’다. 구단의 창단과 해체를 함께했고 3년간 주장을 맡으며 10여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금처럼 프로와 실업팀의 격차가 크지 않던 시절이라 당시 럭키금성 황소(현 FC 서울) 등 프로축구단으로부터 입단 제의도 왔다. 이랜드 푸마가 프로화를 추진하고 있던 때였기에 다른 팀의 제안을 거절하고 부상으로 은퇴할 때까지 최고참 선수로서 팀에 남았다. 당시 구단은 미국 유학까지 제안하며 정 감독을 적극적으로 지도자로 키우겠다는 태도였다.

프로화를 추진하던 이랜드 푸마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거치면서 1998년 갑작스레 해체됐다. 당시 정 감독은 팀에 가졌던 애착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두 번 다시는 연을 맺지 않겠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팀이 2014년 염원이던 프로 창단을 하고도 계속 헤매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가 다른 팀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굳이 전 시즌 꼴찌였던 서울E를 택한 이유도, 팀을 단단한 기반에 세우고 싶은 이유도 그래서다. 정 감독에게 서울E는 미우나 고우나 선수로서 평생을 뛰었던 친정이다.

정 감독은 선수단과 함께 가까운 시일 내 소집을 거쳐 전지훈련을 떠난다. 그는 올 시즌 코로나19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서울E의 팬들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정 감독은 “여태까지 기다려주셔서 고맙다. 팀이 잘되길 항상 한 발 뒤에서 응원해 주신 것 잘 알고 있다”면서 “선수들과 다음 시즌 도약을 위해서 노력하겠다. 팬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