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자던 움직임에 반대했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국회를 통과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대북전단금지법)에는 침묵하고 있다. 과거 정부 차원의 규제에 반대해왔던 통일부가 법안 통과 과정에서 입장을 바꾼 데 이어 인권위마저 함구한 상태다.
인권위는 17일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 통과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새로 입장 내거나 (해당 사안에 대해 별도로) 검토할 계획이 없다”며 “(공식 입장을 냈던) 2015년과 다른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엔 2014년 10월 북한이 대북전단을 담은 애드벌룬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한 사건을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하고 그 상황에 대한 의견표명을 한 것이었다”며 “이 의견이 현재 (법안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인권위는 해당 사건에 대한 전원회의에서 ‘북한 주민의 외부정보 접근권 보장’과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들면서 “민간의 대북전단 활동을 단속하거나 저지하는 조치를 취해선 안 된다”고 결정했다.
앞서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야권 주장에 대해 지난 15일 14쪽 분량의 설명자료를 내고 “2008년 18대 국회부터 대북전단으로 인해 초래되는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입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그동안 14건의 규제 법안이 발의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통일부는 “북측 인사의 언급으로 인해 법률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통일부는 과거 관련법 논의가 있을 때마다 국민의 기본권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는 것이 야당의 지적이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남북 간 상호 비방·중상 (중단) 관련 합의가 처음 이뤄진 게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때이고, 이 합의가 지속된 2018년까지 통일부는 어떤 법을 고치고 어떤 행동은 금지할 것인지에 대해 검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과거 진보 정부까지 포함해 (통일부가) 이런 입장(대북전단금지법 동의)을 취한 적이 없고 문재인정부 들어와서 입장이 변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대북전단금지법이 한·미동맹의 가치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에 따르면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담당 객원연구원인 시나 그리튼스 텍사스대 정치학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바이든 차기 행정부와 ‘가치’에 기반한 보다 광범위한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한국 정부의 역량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보편적 인권이란 시각에서 본다면 전단을 살포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 북한 주민의 알 권리 충족이란 측면이 있지만, 한반도 정세라는 차원에서 보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키우고 그로 인해 접경지 주민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자제해야 할 부분도 있다”며 “미국 등 국제사회와 접점을 찾아야 할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