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블박’ 수상한 유튜브 채널, 당신의 증오를 노린다 [이슈&탐사]

입력 2020-12-17 05:30 수정 2020-12-17 05:30

“추미애의 남편은 갑자기 윤석열의 아파트에 갔다. ‘나는 오늘 너가 이번에 내 가족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러 왔어.’”

어법에 맞지 않고 내용도 거짓인 이 문장은 지난 10월 23일 유튜브에 올라온 한 영상의 제목이다. 국정감사장 발언으로 추·윤 갈등이 본격 비화하던 무렵 제작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궁지에 몰리며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몰래 도움을 요청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영상은 추·윤 갈등을 다룬 한 방송사 영상을 도용했다. 화면 왼쪽 상단에 독수리 문양, 오른쪽 상단에 태극기 그림을 붙이고 ‘긴급 속보’를 적어 넣은 게 편집의 전부다. 영상 조회수는 18만6000회를 넘겼고, 좋아요 수 3300개를 획득했다. 광고도 붙었다. 수익이 창출되는 영상이라는 의미다.

영상을 제작한 채널 이름은 ‘tukpac’이다. 이 채널은 지난달 21일 ‘사조직! 추미애 난리났다! 현금 살포 의혹…’ 제목의 영상도 올렸다. 이번에는 베트남 하노이 남부의 한 시골 마을을 천천히 이동하는 정체불명의 블랙박스 영상을 배경으로 보수 유튜버 ‘진성호방송’ 오디오가 흘러나왔다.

‘여권, 긴급 부패 문서’ ‘대법원 긴급 소환 추미애’ ‘긴급 입원 문재인’…. 이 채널에 올라온 영상 제목은 대부분 이런 형태다. 올여름부터 16일까지 이렇게 제작한 영상이 600개 가까이 된다. 윤 총장 징계위가 열린 이번 주에만 관련 주제를 다룬 11개의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선동형 가짜 뉴스, 내용은 모두 다른 유튜버 채널 영상을 짜깁기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추 장관, 윤 총장, 조국 전 장관 등이 클릭 유도를 위한 섬네일 모델로 등장했다. 이런 수상한 제작물을 찍어내는 채널의 구독자가 2만6000명이다. 이 채널은 ‘meriyah13’ ‘Aslsigning1’ ‘Mdinho9’ 등의 서브채널을 연이어 개설하며 가짜 콘텐츠를 계속 증식 중이다.

‘발라발라TV’ 역시 다른 정치 유튜버의 오디오를 무단 도용해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 채널이다. 내용이 모두 친여 성향이라는 점만 다르다. ‘충격! 윤석열 장모 수사에 검사 210명 투입. 김건희 수상한 행동’(지난 10월 19일 제작) 제목 영상은 베트남 휴양지 영상 배경에 친여 성향 채널 ‘뉴스썰TV’를 붙여 내보낸 것이다. 조회수 7만1500회를 넘겼고, 역시 광고가 달렸다. 지난달 7일 올라온 ‘김학의 별장 성파티 할 때 cctv에 윤석열으 얼굴이 대놓고 나왔다’ 영상은 ‘장용진TV’를 도용했다. 가짜 뉴스인 데다 맞춤법마저 틀린 제목의 영상이 조회수 3만3000회를 돌파했다.

베트남, 독수리, 블랙박스…수상한 채널들


tukpac, 발라발라TV는 모두 베트남과 연관성이 짙어 보였다. 극단적 정치 성향의 콘텐츠가 올라오기 전 tukpac 채널엔 베트남 남성이 한 시골 마을에서 닭을 요리하는 영상이 있었다. 발라발라TV에는 베트남 람동의 한 거리에서 20대로 보이는 청년들이 대화를 나누는 영상, 농사를 짓는 영상 등이 올라와 있다.

이런 채널은 한두 개가 아니다. 채널 ‘News today’는 tukpac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독수리 문양을 영상에 사용했다. 지난달 10일 ‘추미애의 남편이 아내의 충격적인 증거를 계속 유출’ 제목 영상은 시골 마을을 비추는 블랙박스 영상 위에 보수 유튜버 배승희 변호사 오디오가 붙었다. 블랙박스 영상의 좌표가 가리킨 곳은 베트남 북부 타인호아 지역이다.

‘밝혀지라TV’는 주로 친여 성향의 뉴스썰TV, 김초은TV 등을 도용해 영상을 올린다. 영상 제목은 ‘김건희, 임은정에게 비밀 연락 폭로’ ‘김건희, 임은정한테 과거 나와 만난 것도 말했어?’ 등의 거짓 뉴스다. 이전에는 베트남어 제목 브이로그를 올렸었다.

이런 영상들은 모두 돈벌이용이다.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일정 수치를 넘으면 광고 수익을 올리고, 계정 자체를 팔 수 있다. 계정 주들이 추가 수익을 얻기 위해 광고주와 유튜버 간 PPL(간접광고) 직거래 사이트에 계정을 올리고 거래를 시도한 흔적이 확인됐다.

유튜브 채널 ‘tukpac’의 블랙박스 영상 좌표가 베트남을 가리키고 있다.

이런 식의 채널은 국민일보가 찾은 것만 26개다. ‘국내소식’, ‘MrKappa1990’, ‘특집뉴스’, ‘severineoscar’, ‘오늘날의 정치’, ‘TheMilton28’, ‘정권의’, ‘새로운 뉴스 이벤트’ ‘emilia03100’ 등은 이념 편향된 선동형 제목의 짜깁기 콘텐츠를 만들어 올렸다. ‘세상왕TV’는 친여 세력과 반여 세력을 모두 공략하기 위해 이념 편향적 제목의 가짜 영상을 번갈아 가며 올렸다. 그런데 이들 채널의 누적 조회수는 이날 현재 2693만1000회를 넘어섰다.

도둑 채널도 환영하는 유저들

도둑 채널은 이용자들을 낚기 위해 정치 음모론과 가짜뉴스, 극단주의적인 내용을 제목에 담는다. ‘추미애 체포영장 발부’ ‘추미애 사퇴 선언’ ‘윤석열, 장모 버린다’ 등 식이다. 친여, 반여 성향의 엉터리 유튜버 중 구독자 상위 채널 영상 1000개를 분석했더니 거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했다.

하지만 유저들은 이런 가짜 광장의 콘텐츠도 환영했다. ‘추미애 한국 떠난다!’라는 가짜 제목 영상은 ‘TheMilton28’이라는 채널이 지난 10월 27일 올린 것이다. 조회수가 23만9700회를 넘어섰다. 영상을 보면 국감 중계화면을 틀어 놓은 TV 화면 배경에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마스크를 끼고 앉아 있다. 오디오는 배승희 변호사가 정진웅 검사의 독직폭행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좋아요 수는 6500개지만, 싫어요 수는 151개에 그쳤다.

댓글을 보면 “한동훈 대단하다” “속이 시원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뉴스” “추미애 구속하라” 등의 반여 색채 일색이다. 유저들은 외국인이 거짓말 제목으로 유인한 가짜의 광장에 모여 반여 집회를 벌이고 있던 셈이다.


친여 성향의 광장도 다르지 않았다. “김건희, 임은정에게 ‘우리 가족 계속 조사하면 안 좋을 줄 알아. 나뒤에 있는 사람 알잖아’”(밝혀지라TV 제작)라는 제목의 영상은 조회수 11만회, 좋아요 수 5200개를 얻었다. 댓글창엔 내용이 수상하다는 유저들도 일부 있었지만 대체로 “윤석열 일가는 큰 집 가서 잘 생각해 봐라” “한명숙 조국 편파수사” “명쾌한 논리로 분석하셨다” “응원한다” 등의 댓글을 달며 환호하는 내용이 많았다.

엉터리 유튜버의 낚시질에 이끌려 영상을 클릭한 유저들은 댓글을 달고, 좋아요도 누르는 등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했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해준다면 화자는 중요치 않다는 콘텐츠 소비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유저들이 이런 콘텐츠에 환호하는 신호를 보내면 알고리즘은 비슷한 성향을 담은, 보다 자극적인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한다. 극단의 필터버블이 강화되는 것이다.

당신의 증오는 돈이 된다
그렉 벤싱어 뉴욕타임스 편집위원은 이달 초 “소셜미디어에서 반진실(Half-truths)과 거짓말이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미국 대선에서 문제가 된 가짜뉴스 등을 언급하며 “분열은 더 많은 참여를 끌어내고, 이는 더 많은 광고 수익을 가져다준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엉터리 채널은 필터버블에 빠져 있는 유저들을 겨냥하고 있다. 상대를 비난하고 자신의 편만 들어주는 극단의 광장을 찾고 있는 유저가 타깃이다.

대체로 이벤트가 발생하면, 언론사 뉴스가 생성되고, 이에 대한 해석을 담은 이념 편향의 정치 채널 콘텐츠가 만들어지는데, 이때 이를 도용한 엉터리 영상도 같이 제작되는 패턴이 있다(국민일보 12월 10일자 5·6·8면 참조). 이런 경로로 콘텐츠가 재생산되는 과정에선 선동성, 자극성이 점차 커진다. 유저들의 콘텐츠 선택 취향이 이념 편향성을 띠면 알고리즘은 이런 채널의 노출 빈도를 높인다.


극단의 광장에 유저가 들어서면 채널 주인들은 돈을 번다. 구독자수 1000명, 영상 시청 시간 4000시간 이상을 충족하면 수익창출이 시작된다. 엉터리 채널들은 극단으로 안내하는 알고리즘에 기생하고 있어서 분열을 부추기는 이념 편향의 광장이 더 많이 생산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극단의 광장이 많아지고, 유저의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 유튜브도 돈을 번다.

게다가 엉터리 채널들이 사용하는 재료는 이념 편향성이 뚜렷한 인기 유투버 제작물이다. 각 진영의 대표 ‘스피커’들의 메시지가 ‘도둑 채널’을 통해 다시 증식되는 것이다. 결국 분열과 이념 편향의 확대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고착한다.

이소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극단화된 콘텐츠가 돈이 되니 유튜브와 유튜버 모두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은 책임지지 않는다
“저도 참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

황희두 유스타즈 대표(‘알리미 황희두’ 운영자)’는 최근 일부 수익창출채널에서 자신의 음성을 무단도용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아 이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유튜브는 저작권 위반 영상을 자체적으로 파악해주는 필터링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교묘하게 이를 빠져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황 대표는 “이들은 유튜브의 무단 도용 필터링 시스템을 목소리 변조 등으로 교묘하게 빗겨간다”며 “외국에서 운영하는 것 같은데, 직접 제보를 받지 않으면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또 “유튜브에 신고해도 반려하는 경우가 있고, 절차가 복잡해 시간 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 심각성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 걱정이 많다”고 했다. 황 대표는 한 유튜버를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를 한 적이 있는데 구글에서 신원 특정 협조를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도둑 채널’은 신고로 블록을 당해도 또 다른 곳에서 계속 양산된다. 채널이 폐쇄되더라도 다른 채널에 기존 영상들을 업로드하면 그만이다. 동남아 등지에서는 채널을 대량 생산해 ‘수출’까지 한다고 한다. 이들의 무대는 일본까지 확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장은 “허위 사실을 올리거나 명예훼손을 한 유튜브 채널 운영자, 댓글을 단 사람 등에 대한 정보를 구글에 요구해도 회신을 해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미국은 명예훼손에 대해 형사처벌보다는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글이 ‘너네 나라 문제’라는 식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최 과장은 “여러 한계가 있지만 유튜브 채널명이나 영상에 나오는 정보 등으로 단서를 찾아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인력 문제 등으로 누가 채널을 운영하고 악성 댓글을 다는지 일일이 특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문동성 전웅빈 임주언 박세원 기자 theMoon@kmib.co.kr

[극단으로 안내하는 알고리즘 해설서-상식이 2개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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