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유럽연합(EU)과의 포괄적투자협정 체결을 앞두고 외국인 투자가 금지된 업종 수를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내 협상 타결을 희망하는 중국이 EU의 시장 개방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1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외국인 투자 금지·제한 업종은 123개로 지난해 131개에서 축소됐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SCMP는 “이에 따라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 석유와 가스를 탐사하고 생산할 수 있게 됐다”며 “또 중국에서 탄소배출평가를 받는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도 완화됐다”고 설명했다.
중국 당국의 외국인 투자 금지 리스트는 중국과 EU가 이번 주 교착 상태에 빠진 투자협정 체결 협상을 계속하기로 한 가운데 나왔다. 중국과 EU는 2014년 상호투자협정(BIT) 논의를 시작해 지난 7년동안 30차례 이상 협상을 벌여왔다. 양측은 이후 투자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교역, 기후변화, 인권 등으로 범위를 넓혀 포괄적 협상을 진행했다.
연내 협상 타결에 더 적극적인 쪽은 중국이다. 미국과의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EU가 대중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면서 중국으로선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유럽과의 투자협정 체결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지난 9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이때 투자협정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한 신속한 노력을 촉구했다고 SCMP가 전했다. 이달 초 후춘화 중국 부총리는 주중 EU 상공회의소 창립 20주년 기념 만찬을 주최하고, 시 주석의 심복인 류허 경제 담당 부총리는 발디스 돔브로프스키스 유럽 집행위원회 부위원장과 화상통화를 갖는 등 최고지도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EU 역시 연내 협상 타결에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그에 앞서 중국이 시장 개방도를 높이고 국유기업 개혁, 정부 보조금, 인권 등에 관한 국제 기준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니콜라스 샤퓌 주중 EU 대사는 지난주 35차 협상이 끝난 뒤 “우리는 연내 타결에 전념하고 있지만 속도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며 “남은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과 EU의 투자협정은 장기적으로 중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중국이 EU가 요구하는 국제 기준을 수용한다면 CPTPP 가입에 한발 더 다가간 것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지난달 2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국이 주도했다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후속 버전인 CPTPP 가입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CPTPP 가입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일본 등 11개 회원국을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PTPP는 한·중·일 3국과 아세안 10개국에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보다 규모는 작지만 첨단기술, 지적재산권, 디지털 경제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다만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이 시장 개방, 국유기업 개혁, 규제 완화 등을 약속하더라도 실제 이행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라며 “협정 체결이 끝이 아니라 이후의 행동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