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 문 닫은 지금, 클래식은 ‘내년’을 본다

입력 2020-12-17 06:00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모습. KBS교향악단 제공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로 2020년 클래식계는 취소를 거듭했다. 올 초 보스턴 심포니 첫 내한 공연을 시작으로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와 런던 심포니 내한 등 계획된 굵직한 공연이 줄줄이 무산됐다. 국내 유수의 교향악단·아티스트 무대도 상황은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내년은 조금 다를 전망이다. 클래식 애호가들 허기를 달래줄 굵직한 공연들이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준비되고 있어서다.

국내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KBS교향악단은 창단 65주년인 내년 세계적 지휘자와 정기연주회(12회)를 꾸렸다. 과거 상임 지휘자로 활약한 아시아 필하모닉 예술감독 정명훈을 비롯해 뉴욕 필하모닉 얍 판 츠베덴, 벤쿠버 심포니 브람웰 토베이 등 마에스트로가 무대에 오른다. 토베이는 6월 25일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1번을, 츠베덴은 10월 29일 베토벤 ‘운명’과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을 선보인다. 정명훈은 8월 26일 공연 예정이다.

이들 모두 올해 내한 무산의 주된 이유인 ‘2주 자가격리’를 감수한 무대여서 의미가 있다. 코로나19가 지속하더라도 취소될 가능성이 작아서다. 공연장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로 통일했다. KBS교향악단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장기전이 될 거로 생각하고 연 초부터 해외와 접촉했다”고 전했다. 안전한 국내 공연장에 대한 신뢰도 이 같은 결정에 힘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휘자 얍 판 츠베덴. 연합뉴스


상반기엔 신성이 포진해 있다. 스페인 출신의 안토니오 멘데스가 2월 4일 포문을 연다. 4년 만에 내한한 그는 비교적 낯선 볼프강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같은 스페인 출신 신예로 26일 지휘하는 프란시스코 발레로 테리바스는 기타리스트 박종호와 팔라우 협주곡을 선보인다. 이어 3월 25일 오스트리아의 사샤 괴첼이 피아니스트 손민수 문지영 협연으로 슈트라우스 바그너 등 독일 낭만주의 음악을 들려준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4개월 단기 시즌(교향악 11회·실내악 2회)을 먼저 공개했다. 코로나19 확산세를 지켜보면서 프로그램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공연은 전부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눈길을 끄는 건 서울시향 전·현직 부지휘자들의 무대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콩쿠르에서 여성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마에스트라 성시연은 1월 21~22일 하이든 교향곡 44번 ‘슬픔’과 모차르트 레퀴엠을 연주한다. 현 부지휘자 윌슨 응은 2월 18~19일 스크랴빈 등 근현대 작품을 선보이고, 또 다른 부지휘자 데이비드 이는 3월 5일 멘델스존 교향곡 1번을 한국 초연으로 선보인다.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음악감독. 서울시향 제공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은 장기인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을 골랐다. 이 곡과 함께 4월 15~16일 이틀 동안 벤스케 감독은 작곡가 진은숙의 ‘수비토 콘 포르자’도 초연한다. 진은숙은 2017년까지 서울시향에서 상임 작곡가를 지냈다. 같은 달 21~22일에는 버르토크의 ‘댄스 모음곡’과 베토벤 교향곡 1번을 올린다.

코로나19로 인한 구미권 봉쇄로 해외를 오가며 활약하던 국내 아티스트도 대거 만날 수 있다. 2월 윌슨 응 지휘 무대에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3월 데이비드 이 공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자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협연자로 나선다. 소프라노 임선혜는 3월 25~26일 최수열 부산시향 상임 지휘자 지휘로 브리튼의 ‘일뤼미나시옹’을 선보일 계획이다.


피아니스트 엘리소 비르살라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국공립·민간 공연장과 기획사도 내년 준비에 분주하다. 금호아트홀연세는 거장 피아니스트 엘리소 비르살라제와 로버트 레빈을 초청해 각각 11월과 12월 공연을 선보인다. 러시아의 전설로 불리는 비르살라제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20세기 대표 여류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레빈은 포르테피아노·모던피아노·오르간·현대 피아노 등을 아우르는 건반 악기의 명장이다.

공연기획사 크레디아 역시 고음악의 거장 필립 헤레베헤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공연(5월), 미샤 마이스키 첼로 리사이틀(5월), 요요 마 첼로 리사이틀(10월), 소프라노 조수미와 이탈리아 실내악단 이 무지치 공연(12월) 등 기대작을 여럿 준비 중이다. 세종문화회관이 선보이는 8월 홍콩위크2021도 주목된다.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2019 올해의 오케스트라’로 선정한 홍콩 필하모닉의 내한 무대로 츠베덴이 지휘하고 차이콥스키 등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협연한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