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로 코호트 격리된 울산 양지요양병원 의료진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해달라는 국민청원 글이 등장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의 자녀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자는 “우리 엄마를 지켜달라”는 눈물겨운 호소를 글 안에 담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15일 ‘울산 양지요양병원 저희 엄마를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의 긴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 A씨는 “울산 양지요양병원 간호사인 어머니는 지난 5일 (병원 내) 첫 확진자가 나온 후 열흘 동안 코호트 격리돼 확진자들이 가득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며 “어머니는 환자를 두고 나올 수 없어 버티고 계시지만, 자식으로서는 ‘당장 때려치우라고’ 말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머니는) 잠시도 돌보기 힘든 분들을 24시간 간호하고 격리된 모텔에 갇혀 기절하곤 하신다”며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고 쓰러지기 직전 상태로 버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병원은) 확진자와 비확진자 층만 나뉘어있을 뿐이지 음압병실로 관리되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가 어디에 노출돼 있는지도 모른다”며 “그곳 복도에서 쭈그려 앉아 밥을 먹다가 관리가 안 된다는 이유로 각 층에서 일하는 의료진 모두가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고 한다. 어제는 같이 밥 먹은 의료진 중에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는데 뭘 믿고 병원에서 밥을 먹느냐”고 토로했다.
A씨는 “이렇게 하소연하듯 말하는 이유는 이 상황이 끝날 것 같지 않은데 아무런 대책이 없기 때문”이라며 “코호트 격리가 처음에는 지역감염 확산을 막고 빠른 대처를 위해 좋은 조치인 줄 알았지만 심한 말로 표현하자면 그냥 가둬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빨리 확진자들을 음압 병동으로 이송하고 완전하게 분리시키는 게 맞다”며 “울산에 음압 병동이 충분히 없다는 건 잘 알지만 확보하겠다는 약속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지적했다.
의료진들의 희생을 언급하면서는 “책임감 하나만으로 마스크와 방호복에 의지한 채 현장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식”이라며 “두려움을 느끼는 건 그들도 똑같다. 하루빨리 환자들과 의료진의 안전을 지켜달라. 불가능한 걸 부탁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병원 내 의료진이 겪는 극한의 상황은 앞서 한 관계자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전해진 바 있다. 울산 양지요양병원에 근무 중이라는 의료진 B씨는 15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코호트 격리라고 하지만 연달아 4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 병원 내 감염관리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기본적인 방역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아 사태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진들은 식사시간에 오염된 폐기 물통이 있는 비상계단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며 “함께 밥을 먹었던 직원 중에서 확진자가 나와도 시청에서 정확한 확진자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 불안에 떨면서 근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일부 의료진은 확진자와 비확진자 병동을 옮겨가며 근무했다. 이렇게 되면 비확진자 병동도 안전할 수가 없으며 의료진들이 감염 매개체가 돼 층별로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꼴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폐쇄 병동에서 입는 근무복도 지원되지 않아 개인 사복을 입고 일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다른 병원에서는 수술복이나 흰 티, 면바지 등을 지급해주는데 현재는 개인 사복에 방호복을 착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근무 때 입은 옷은 오염이 많이 돼 전문세탁이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못해 숙소에서 직접 세탁하고 있다”며 “출퇴근 때도 폐쇄 병동에서 입은 옷을 그대로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의료인력 확충이 시급하다는 걸 강조하면서는 “의료진들이 24시간 근무로 면역력이 저하돼 있어 바이러스에 더 취약해지고 있다”며 “일부 병원 직원들은 감염병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폐쇄 병동 내에서 보호구를 탈의하거나 물을 마시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전문 의료인력을 하루빨리 투입해야만 교차 감염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 양지요양병원은 지난 5일 처음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코호트 격리를 해왔다. 그러나 전수검사 때마다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면서, 병원 밖의 n차 감염 포함 관련 확진자는 206명이 됐다. 울산시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추가 의료인력을 요청한 상태다. 또 병원 내 비확진자를 다른 시설로 이송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