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국내 상장기업 경영진 10명 중 6명 이상이 내년에 개인적으로 주식 투자를 늘리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이들 ‘헤비급 개미’가 가세하면 올해 외국인과 국내 기관투자자에 맞서 고군분투하다시피 해온 ‘동학개미’는 든든한 아군을 얻게 되는 셈이다.
삼성증권은 국내 상장사 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들에게 내년에 개인적으로 비중을 늘리고 싶은 자산을 물은 결과 응답자(487명)의 64.6%가 주식을 꼽았다고 15일 밝혔다. 전통적 부유층 선호 자산인 부동산 비중을 늘리겠다는 응답자는 11%에 그쳤다.
‘내년 주식 비중 확대’ 응답자 중에서는 과반인 56.2%가 국내 주식을 선택했다. 상당수가 내년 국내 증시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는 의미다.
나머지 응답자는 선진국 해외주식 30.4%, 신흥국 해외주식 13.4%로 나뉘었다. 삼성증권은 “국내 주식 강세에도 글로벌 포트폴리오 확대에 대한 니즈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풀이했다.
내년 코스피 지수 최고치를 묻는 질문에는 42.5%가 2800~3000선을 예상했다. 3000 이상을 기대하는 응답자도 16.6%로 적잖은 비중을 차지했다. 약 60%가 올해 기록적 강세를 보인 증시가 내년에 더욱 선전하리라고 본다는 의미다.
투자 유망 업종은 반도체(22.6%) 제약·바이오(19.9%) 2차전지·디스플레이(16.4%) 순으로 꼽았다.
이들이 판단하는 내년 투자 핵심 변수는 단연 ‘코로나19 위기 지속 여부’(38.6%)다. 이와 함께 미·중 갈등, 원·달러 환율 향방, 미국 신정부 정책 등 미국 관련 이슈가 46.3%를 차지했다.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의 내년 경영환경 전망에 대해서는 “올해보다 좋을 것”이라는 응답(36.6%)이 “부진할 것”이라는 답변(20.7%)보다 높게 나왔다. 다만 가장 많은 42.7%가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및 그 여파에 따른 우려를 내비쳤다.
이날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가 개최한 ‘코스피 최고치 경신, 현재와 미래를 논하다’ 토론회에서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증시 강세 배경에 대해 “압도적인 개인투자자의 힘”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세계 주요 25개 지수 중 코스닥과 코스피는 각각 상승률 1, 4위를 기록했다.
김 센터장은 “올해 개인투자자의 연간 순매수 규모는 단연 사상 최대”라며 “한국 증시 급반등은 철저하게 개인 투자자가 주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증시가 어려울 때부터 주식을 사면서 주가가 많이 올랐다”며 “증시 속설에 ‘개인투자자가 사면 상투’라고 하는데 외국인과 기관이 파는 과정에서도 개인투자자가 주가를 끌어올렸다”고 덧붙였다.
올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과 국내 기관투자자가 각각 24조원, 35조원어치를 파는 동안 개인투자자는 62조원을 순매수했다. 주식시장에 들어온 개인 직접투자자금은 84조원으로 집계됐다. 김 센터장은 “과거 개인 직접투자자금이 많이 들어왔던 때가 2005~2008년”이라며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96조원이 들어왔는데 올해는 1년간 84조원이 들어왔으니 비교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주식 투자 붐과 비교해 올해 개인의 투자 양상은 ①자금 유입 규모가 압도적으로 컸고 ②주식형 펀드 등을 통한 간접투자가 아닌 직접투자가 주를 이룬 데다 ③오른 뒤가 아니라 바닥에서부터 샀다는 점이 달랐다고 김 센터장은 분석했다. 올해는 개인투자자가 바닥에서 주식 비중을 늘린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그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개방한 1992년부터 한 번도 예외 없이 바닥에선 외국인이 사고, 주가가 오른 뒤에 개인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바닥에서부터 개인투자자가 들어온다”며 “어떻게 보면 ‘스마트머니’(똑똑한 자금)라고 할 수 있는 돈이 들어왔다”고 평가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증권시장 발전을 위한 향후 과제’ 발표에서 “한국 자산 중 위험자산 비중은 6.5%로 주요국 대비 현저히 낮고 부동산이 높다”며 “다행히 젊은층 중심으로 주식투자가 이뤄지고 있으나 단타(단기매매) 위주라 자산 증식 수단으로 자리잡진 못했다”고 지적했다. 장기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게 이 실장의 견해다.
그는 현행 일반형 200만원, 서민형 400만원인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비과세 한도를 2배 이상으로 늘리고 장기보유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증권거래세 폐지 계획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이 실장은 “대표적 세제 상품이 ISA인데 실질적으로 가계 자산 증식에 도움이 못 됐다는 지적을 받는다”며 “미국처럼 증권거래세도 단계적으로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창욱 조민아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