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출신의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 출석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중간 역할’을 했다는 의혹은 오해라고 해명했다. 이는 사법농단 사태를 폭로한 판사 출신의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2017년 대법원 자체 진상조사에서 제출한 자료를 통해 불거진 의혹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부장판사 윤종섭)는 15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판에 이수진 의원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했다. 이날 신문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당시 사법정책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국제인권법연구회(연구회) 소속 법관들의 공동학술대회 개최를 저지하려 했다는 의혹을 두고 이뤄졌다. 이수진 의원은 학술대회 개최를 추진한 연구회 내부 소모임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을 만든 판사 중 한 명이다.
학술대회가 열리기 직전인 2017년 1월 무렵 대법원 재판연구관이었던 이수진 의원은 당시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자신을 두 번이나 불러 대회 개최를 막으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후배들이 앞으로 법원이 어떻게 변할지 설계하는 자리인데 행정처가 막으면 오히려 질 것이다. 막아선 안 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후) 후배판사들에게 전화해서 행정처에서 난리가 났다고 전달했을 뿐”이라며 “같은 차원에서 이탄희 의원에게도 전화했는데, 보수 언론을 통해서 마치 제가 중간 역할을 했다는 식으로 나온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수진 의원이 행정처와 인사모 사이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의혹은 이탄희 의원이 대법원 자체 진상조사 과정에서 제출한 자료를 통해 불거졌다. 이탄희 의원은 2017년 3월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 조사에 자신의 휴대전화 문자와 수첩, 달력 등을 토대로 주변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날짜별 표로 만들어 제출했다. 여기에는 같은 해 1월 이수진 의원이 이탄희 의원과 통화에서 “행정처 높은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동학술대회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적혔다. 이수진 의원이 “내가 중간 역할을 많이 했다”고 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이에 이수진 의원은 “이탄희 의원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나중에 들어온 분이라 제 뉘앙스에 대해 오해했을 수 있다”며 “저는 (다른 취지로) 말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는 건 상대방의 몫”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규진 위원에게는 (학술대회 중단을) 못한다고 해놓고 다른 판사에게는 다르게 말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이탄희 의원도 국회 와서 제게 ‘누나가 종용했다고 말한 적 한 번도 없다. 그냥 적어놨을 뿐이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수진 의원은 ‘인사 불이익’의 피해자라는 주장도 유지했다. 다른 재판연구관에 비해 업무보고서 생산량이 적고 야근을 하지 않는 등 업무능력에 문제가 있어 좌천성 인사를 당한 것이란 다른 법원 관계자의 증언을 반박한 것이다. 이수진 의원은 대법원 재판연구관 2년차인 2017년 2년 보직기한 3년을 못 채우고 대전지법으로 전보됐다.
이수진 의원은 당시 연구조 팀장과 저녁식사하기가 불편해서 따로 김밥을 사먹고 집에 자료를 들고 가서 야근을 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 생산량이 적었다는 지적에 대해선 “캐비넷이 묵혀둔 어려운 사건에 대해 품격 있고 질 좋은 판결이 나가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쓴 것”이라며 “대법관들도 (보고서 품질에) 만족스러워 했다”고 반박했다.
인사 불이익을 주장한 이유에 대해서는 “(행정처가) 나를 전격적으로 내보내면서 2017년 3월 공동학술대회에 판사들이 대거 몰리는 걸 막으려 했던 것 같다”며 “인사발령이 나니까 대법원의 다른 연구관들이 완전히 위축돼 ‘정말 인사를 이렇게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