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도지사 측이 상고심에서 “킹크랩 시연 준비는 있었으나 실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김 지사 측은 ‘자기분열 수준’ ‘킹크랩 로그 기록에 대한 절대적 맹신’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항소심을 거세게 비판했다. 반면 특검 측은 드루킹 측근이 일본대사직 요청을 거절당한 뒤 쓴 편지를 근거로 김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유죄 판단을 내려달라고 맞섰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지사 측은 상고심에서 다툴 주요 쟁점을 정리한 상고이유서를 지난 7일 대법원에 제출했다. 김 지사 측 변호를 맡은 태평양이 120쪽, LKB앤파트너스 등이 300쪽 분량의 상고이유서를 각각 냈다. 특검 측은 60쪽 분량의 상고이유서를 지난 1일 접수했다. 앞서 김 지사 측은 항소심이 유죄로 판단한 댓글조작 공모 혐의(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 특검 측은 무죄 선고가 나온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 제안 혐의(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각각 상고했다.
김 지사 측은 상고이유서에서 “김동원이 킹크랩 시연을 준비했으나 실행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1심과 항소심에서 언급된 적 없는 쟁점이다.
김 지사 측은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이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사무실에서 2016년 11월 9일 댓글순위 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의 시연 준비를 한 채로 김 지사 방문을 기다리면서 가동해본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8시7분15초~8시23분53초에 킹크랩이 작동한 로그기록은 실제로는 김 지사와 무관하다는 취지다. 김 지사 측은 “변호인으로서는 시연이 없었다는 게 객관적 사실이고 김씨의 지배영역에서 일어난 일을 함부로 넘겨짚을 수도 없어 1심과 항소심에서는 이 가능성을 정면으로 제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김 지사 측은 김씨가 여러 허위 진술을 했음에도 김 지사에게 불리한 진술만 항소심이 ‘취사선택’했다고 항변했다. 김 지사 측은 상고이유서 서두에도 “원심에게 아쉬운 것은 심리를 위해 기울인 시간과 노력의 부족이 아니다. (원심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겸허한 마음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 발견’에 대한 과욕으로 판단을 그르쳤다”고 적었다.
앞서 항소심은 “김 지사가 고개를 끄덕여 킹크랩 개발을 허락했다” “매우 기뻐하는 걸로 보였다”는 등의 김씨 진술은 배척했다. 대신 김 지사가 김씨와 악수를 하고 돌아갔다는 김씨 일당 진술을 토대로 김 지사가 킹크랩 개발·운용에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고 봤다. 김 지사 측은 “악수는 의례적 인사의 의미일 뿐 항소심의 추론은 궁색하다”고 항변했다.
‘닭갈비 영수증’ 쟁점에 대해서는 “마구잡이로 던지는, 아니면 말고 식의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지사 측은 김씨 일당이 포장해온 닭갈비를 김 지사와 함께 먹은 시간을 감안하면 킹크랩 작동 시간에는 시연이 아닌 브리핑을 듣고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김 지사 측은 김씨 일당이 수사 초기 “김 지사와 저녁을 먹었다”거나 “기억이 불명확하다”고 말하다 식당에서 닭갈비를 먹고 갔다는 특검 수사보고가 나온 직후 진술이 바뀐 것을 문제 삼았다.
반면 특검 측은 김 지사가 김씨의 측근 도두형 변호사에게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항소심 판단에 불복하면서 도 변호사의 편지를 중요 증거로 제시했다. 앞서 항소심은 김 지사의 인사 제안은 2017년 19대 대선에 도움을 준 데 대한 보답일 뿐 2018년 6·13 지방선거와는 무관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특검은 김 지사를 2018년 8월 기소했는데, 대선이 있던 2017년 5월은 선거법 공소시효 6개월이 이미 지난 상태였다.
도 변호사는 2017년 6월 김 지사 측에 일본대사직을 청탁했다가 거절당한 뒤 분노한 상태에서 김씨에게 편지를 썼다. ‘현재 하고 있는 뉴스 작업을 모두 중단하고 향후 지방선거와 관련한 작업도 하지 않겠다는 뜻을 통보하자’는 내용이 편지에 적혔다. 김씨와 도 변호사는 이후 수사·재판 단계에서는 “인사 제안과 지방선거는 관련성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특검은 “김씨와 도 변호사도 인사추천과 지방선거의 관련성을 명백히 인식한 것”이라며 “항소심은 객관적 서증은 도외시한 채 이들의 사후적 진술만을 취사선택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 지사는 일본대사직 거절 직후인 2017년 여름 청와대에 도 변호사를 오사카총영사로 추천했다가 어렵다는 답을 들었고, 12월에 센다이총영사를 대신 제안했다. 특검은 이를 두고 “오사카 총영사직은 애초에 김씨와 경공모 회원들이 지방선거까지 작업을 계속하도록 하려는 유인책인 동시에 센다이 총영사직은 그 연장선에서 김 지사가 김동원과 경공모와 관계를 지속하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특검은 ‘지방선거 후보자가 특정되지 않아 무죄’라는 항소심의 법리도 반박했다. 김 지사에게 적용된 선거법 조항은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금품 기타 이익의 제공 의사를 표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항소심은 여기서 ‘선거운동과 관련하여’의 요건을 구비하려면 특정 선거 및 특정 후보자의 존재가 인정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김 지사가 김씨 측에 센다이총영사 추천 의사를 전할 당시에는 2018년 6·13 지방선거에 나갈 후보자가 특정되지 않았으므로 무죄라고 판시했다.
이에 특검은 “특정 후보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상정할 수 없는 기간에 선거운동 관련 이익제공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해석론은 이익을 우회적으로 제공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고 비판했다. 선거운동 요건을 갖추기 전 사전 대가를 지급하는 식으로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는 취지다.
특히 특검은 “특정정당의 특정 후보자를 위한 이익제공은 처벌할 수 있고, 모든 후보자를 위한 이익제공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어서 더 중한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결과에 이른다”고 했다. 이어 후보자의 존재 유무로 선거법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선거법 문언, 체계, 판례에 비춰 허용되지 않는 축소해석”이라고 특검은 강조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