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사장 재임 시절, 임원의 사표 수리 문제를 두고 2018년 민사소송 대상이 됐다. ‘변 사장에게 속아서 사표를 제출했다’는 게 당시 사임한 원고의 주장이었다. 1심 법원은 이듬해 “변 사장의 기망이 있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사가 이에 반발해 항소했지만 항소심 법원은 ‘화해권고 결정’을 내리는 데 그쳤다. ‘기망이 아니다’는 공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별도 언급이 없었다. 이 사건은 1심 판결대로 결국 변 후보자의 허위 진술로 인정된 셈이다.
발단은 2017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박원순 블랙리스트 문건’ 의혹이다. 법원 판결문과 당시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변 사장은 사태 수습을 위해 2017년 11월 6일 사장실에서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변 사장은 이 자리에서 미리 준비해둔 임원급 간부 7명의 사직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간부 전원에게 서명을 받았다. 그런데 3일 뒤 인사 분야 담당자인 이모 본부장의 사직서 1장만 수리됐다. 이 날은 변 사장의 임기 만료일이기도 했다. 당시 유일하게 사표가 수리된 이 본부장 측에선 연임이 무산된 변 사장이 블랙리스트 문건 제보의 배경으로 의심을 받던 자신만 의도적으로 제거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이 본부장은 변 사장에게 속아 사표를 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변 사장이 회의에서 “오전에 서울시 부시장을 만나고 왔는데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경영진 모두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고,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면서 사직서 서명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 부시장은 사표 수리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공사도 “사태 수습을 위해 경영상 공동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이 본부장이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그 과정에서 변 사장이 이 본부장을 기망하거나 착오를 유발한 사실이 없다”고 맞섰다.
재판 과정에선 ‘서울시 부시장이 변 사장에게 경영진 사표 수리를 요구하거나 지시한 적이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1심 재판부는 “변 사장이 서울시 부시장으로부터 경영진의 사직서 제출 요구나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는데도 회의에서 그러한 것처럼 전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본부장이 사직서를 제출한 이유는 변 사장의 허위진술로 인해 서울시로부터 사직서 제출 요구나 지시가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이 변 사장에 속아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공사는 판결에 불복해 지난해 4월 항소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12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지급을 명령한 보수 4400여만원에서 일부 감액된 금액을 지급하되, 더 이상의 법적분쟁을 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변 사장의 기망 행위에 대한 별도의 언급은 없었고, 양쪽 모두 이 결정을 수용했다.
노무소송에 밝은 한 변호사는 14일 “1심 법원이 증거를 바탕으로 변 사장의 기망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한 부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면서 “화해권고 결정에서 기망 행위에 대한 별도 언급이 없는 것도 결국 다툼의 여지가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변 사장 측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국민일보에 “변 사장 입장에서는 ‘책임 지라’는 서울시 쪽의 얘기를 ‘사표 내라’는 취지로 알아들었을 것”이라며 일부러 속인 게 아니라 오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화해권고 결정에서 지급액이 일부 감액된 점을 보면 ‘급여’가 아닌 ‘위로금’ 성격으로 봐야 하는데, 결국 ‘기망이 아니다’는 공사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 후보자는 ‘기망 행위’에 대해서는 별도의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김판 이현우 이상헌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