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 왜 하필 지금일까요 [스토리텔링 경제]

입력 2020-12-14 07:00

당초 계획과 달리 이미 직접적 부담 너무 늘어
‘고자산 저소득’ 부담 감내해야 vs 배려 필요

연말 공시가격 논란이 뜨겁다. 종합부동산세, 건강보험료 등 각종 고지서를 받아 든 사람들이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공시가격은 국가가 부과하는 60여 가지 조세, 행정 조치의 기준이 된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공시가격만 바꿔도 간접적으로 여러 부담이 커진다. 이 가운데 공시가격 현실화는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겠다는 정책이다. 현재 아파트의 경우 실거래가 10억원일 때 공시가격은 약 6억9000만원이다. 시세를 반영하는 비율이 평균 69%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확한 거래액을 반영하겠다는 공시가격 현실화는 필요한 것이고, 정당성도 있다.

다만 옳은 정책임에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왜 하필 지금일까. 이미 부동산 시장은 직접적인 부담이 늘고 왜곡된 상태다. 과세 형평성 차원이라면 비슷한 정책이 먼저 시행돼 겹겹이 쌓여 있다. 공시가격까지 얹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집값 폭등에도 자산을 깔고 앉아있는 1주택 ‘고자산 저소득층’도 문제다. 늘어나는 부담을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는 시각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先 공시가격 後 직접 부담 인상 맞는데…순서 바꿔
공시가격 현실화는 현 정부 출범부터 거론됐다. 시세 대비 너무 낮고,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 시세가 같아도 공시가격이 다른 경우가 발생했다. 2018년 기준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를 반영하는 비율은 공동주택 68.1%, 표준주택 51.8%, 토지 62.6% 등에 그쳤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비율을 올리고 있다. 2018~2020년 1~3%포인트 조정했고, 향후 5~15년 내 90% 수준까지 맞출 계획이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비싼 집에 살면 걸맞은 부담금을 국가에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부담을 늘릴 테니 투기를 하지 말라는 것 등 현 정부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

공시가격은 간접적으로 부담을 늘리는 방법이다. 세율 인상, 규제 도입 등을 하지 않고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정권 초반 부동산 시장 안정화 방안으로 주목 받았다.


그런데 정부 계획과 달리 지난 3년 동안 국민의 직접적인 부담이 너무 증가했다. 세금 인상만 수차례다. 종합부동산세는 과표 3억~6억원이 신설되고, 최고세율은 2.0%에서 3.2%까지 올랐다. 내년엔 6.0%까지 치솟는다. 양도소득세도 다주택자는 10~20%포인트 세율을 중과하고, 각종 비과세 요건을 강화했다. 내년엔 20~30%포인트로 중과가 더 세진다. 여기에 올해 8월부터는 전·월세 계약을 규제하는 ‘임대차3법’도 시행됐다.

이 시점에 공시가격 현실화는 ‘직접적 부담 인상+간접적 부담 인상’ 누적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형평성 차원에서 더 강한 정책이 이미 시행 중이라 효과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굳이 지금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홍우형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시가격 현실화는 꼭 필요하지만, 추진 시점이 잘못됐다”며 “직접적 세율 인상, 임대차3법, 거래세 인상 등으로 시장이 왜곡되기 전에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 하나만 보면 당연히 추진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직접적 수단에 이것까지 추가한다는 것은 별개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고 말했다.

고자산 저소득층 당연히 감내?

공시가격은 부동산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기초연금, 건강보험료, 상속·증여세, 장학금 등에도 활용된다. 국가가 국민에게 무언가를 부과할 때 또는 무언가를 줄 때 쓰인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만 주목하면서 광범위한 과세·복지 기준을 건드리는 위험성을 간과한다는 비판도 있다.

건강보험료는 매년 11월 조정된다. 당장 지난달 건강보험 피부양자 탈락자 51만6000명 중 재산 증가 영향을 받은 이들은 약 3.3%(1만7000명)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초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도 매년 상반기(4∼6월), 하반기(10∼12월) 조정된다. 공시가격 인상의 재산 변동으로 제외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재산에 따른 건보료 피부양자 탈락 규모가 적고, 기초연금도 소득 하위 70%로 총량이 같아 누군가 탈락되면 더 어려운 노인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고자산 저소득층’을 둘러싼 갈등은 커지고 있다. 1주택자인 이들은 주택 가격이 올라도 처분할 때까지는 실현 이익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자산은 깔고 앉아있는데 늘어나는 보유세, 건보료 등 각종 부담을 적은 소득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하소연 한다. 집값은 정부가 올려놓은 것이고, 모든 지역 가격이 같이 올라 이 집을 팔아 다른 곳으로 갈 때 차익도 크지 않다는 불만도 상당하다.

정부와 일부 여론은 냉정하다. 어차피 향후 차익을 실현할 것이고, 부담이 크면 집을 팔면 된다고 반박한다. 팽팽한 인식 차이는 공시가격 현실화 뿐만 아니라 다른 부동산 정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래 갖고 있던 집 한 채가 정부 정책으로 가격이 폭등한다면 부담 강화에 반발이 생길 수 있다”며 “고자산 저소득층 갈등에 대해서도 정부가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