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중 파견근무를 나갔다가 몽유병 환자로부터 폭행당해 눈을 잃은 피해자가 법적 한계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청원 글을 올렸다.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015년 몽유병 병사에게 피해를 입은 박상병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23살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지만 도중에 불행한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잃었다. 황당한 법 때문에 억울한 사정에 처했는데 제 호소를 들어 달라”고 했다.
청원인은 “2015년 3월 분대장 교육을 받기 위해 신병교육대대로 파견가게 됐다. 여러 부대에서 관련 교육을 받기 위해 분대장들이 모였으며, 일주일 정도의 일정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숙소 옆자리 A상병은 교육 첫날 취침 도중 욕설과 함께 옆에 있던 B병장 옆구리를 가격했는데 깨어나서 혼잣말로 ‘약을 안 가져 왔다’고 말하더라. 당시엔 감기약 정도인 줄 알았다”고 했다.
다음 날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청원인은 잠이 들었다. 잠을 자던 중 극심한 고통에 눈을 떴다. 청원인은 “누군가가 몸 위에 올라타서 제 팔다리를 제압하고 마구 때리고 있었다. 왼쪽 눈에 아예 감각이 없고 뭔가 액체가 터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A상병은 몽유병을 앓고 있었고, 잠에 빠진 상태에서 청원인을 폭행한 것이다. 청원인은 “겨우 옆으로 밀쳐내자마자 A상병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고 썼다.
청원인은 관물대를 두드려 구조 요청을 했고, 즉시 사단 의무대로 보내졌다. 심각한 상처를 입어 수술이 시급한 상태였지만 군의관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후송이 어려우니 내일 오전에 국군수도병원으로 보내주겠다”였다. 결국 다음 날에야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청원인은 “(국군수도병원에서) 두 명의 군의관이 상태를 보더니 ‘실명이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인데 왜 이제야 왔느냐. 즉시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데 군병원에선 이런 전문적 수술을 할 수 없으니 민간병원으로 가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대는 청원인을 바로 병원으로 후송하지 않았다. 청원인은 “부대에선 무조건 우선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고만 했고, 우왕좌왕을 거듭하다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아버지가 강하게 항의하고 나서야 외부 병원에 갈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민간병원으로 옮겨진 청원인은 망막 진탕, 좌안 망막하 출혈, 좌안 외상성 홍채염 등을 진단받았다. 출혈이 일어난 곳에서 이미 피가 굳기 시작했고, 임시방편으로 출혈을 분산하기 위해 가스 주입술을 받았다. 하지만 결국 왼쪽 눈을 잃고 말았다.
청원인은 “소속 부대는 제가 황당한 폭행사고를 당해도 그저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가장 큰 잘못은 가해자 본인이겠지만 가해자에게 몽유병 등 정신병이 있음을 알고도 군복무를 시킨 소속 부대에 화가 난다. 가해자의 정신병 약을 관리하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사고 가능성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파견 보내면서 약을 주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나중에 들으니 그것도 실수로 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원인은 수술 후 부대로 복귀했고, 4개월간 복무한 뒤 만기 제대했다.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어떻게든 치료비 등을 받을 수 있게 해줄 테니 일단 문제삼지 말자”는 부대 상급자들의 애원 때문이었다. 청원인은 “전역 이후 국가는 제게 국가유공자 등을 지정해 줄 수 없다고 하더니 그보다 낮은 등급의 국가보훈대상자를 지정해줬다. 매월 얼마씩의 보훈급여금을 줬다”고 했다. 이어 “당시 이런 업무를 처리하던 사람들은 우선 보상을 받고 나중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라면서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청원인은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었다. 이중배상 금지 조항 때문이다.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은 군인이 집행과 관련해 전사하거나 상처를 입어 법률에 의해 보상받은 경우 다시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이 법은 1971년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평등권에 위배되는 조항이라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이듬해 유신헌법이 제정되면서 헌법에 명시됐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청원인은 “보상을 먼저 받으면 국가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것이냐”고 답답해했다. 그는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제 눈을 다시 찾고 싶다. 어린 나이에 이런 장애를 가지고 일을 하기가 여의치 않다. 하지만 그것보다 법·제도가 이상하고,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개선되지 않은 현실 때문에 피눈물이 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부잣집 자식이 아니라서 젊은 나이에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입대하는 수많은 평범한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라며 “우연한 사정으로 눈을 잃었지만 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홍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