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60) 영화감독이 발트 3국 중 한 곳인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합병증으로 숨졌다.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유일한 한국 영화 감독, 거장의 타이틀을 쥐었던 그가 라트비아라는 곳에서 홀로 세상을 떠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1일 러시아 타스 통신 등 현지 언론은 김 감독이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발트지역 언론 델피(Delfi)를 인용해 보도했다.
한국 외교부는 김 감독의 사망을 공식 확인하진 않았지만 “주라트비아 대사관을 통해 우리 국민 사망 사실을 접수한 후 현지 병원을 통해 관련 경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또 “국내 유족을 접촉하여 현지 조치 진행 상황을 통보하고 장례 절차를 지원하는 등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작사 김기덕 필름 측도 “가족 확인 결과 외신에서 보도된 김기덕 감독의 사망 소식이 가족들에게도 오늘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관계자들은 물론 유족들 역시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며 “장례 일정과 절차는 보다 자세한 상황을 파악한 후 진행 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달 20일쯤 라트비아에 입국해 현지 영화계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거처를 마련해 생활하고 있었는데 지난 5일쯤부터 연락이 닿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델피 보도에 따르면 김 감독은 라트비아 북부 휴양 도시 유르말라에 저택을 사고, 라트비아 영주권을 획득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지 지인들은 약속된 날에 김 감독이 나타나지 않아 수소문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생인 김 감독은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은곰상)을 받으며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엔 영화 ‘피에타’로 한국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네치아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대표적인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받은 상은 이 뿐이 아니다. 2004년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아리랑’으로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받으며 3대 영화제에 두루 이름을 올렸다.
1996년 데뷔작 ‘악어’부터 그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거의 매년 영화를 만들어냈다. 저예산 독립 제작 체제로 작업하며 각본, 연출, 미술을 거의 스스로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회에 소외된 이들의 삶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영화는 영화 ‘나쁜남자’에서처럼 주로 성매매와 폭력에 노출된 여성, 그를 이용하는 악한 남성 등의 캐릭터를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냈다.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폭력성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 평가는 양극단으로 엇갈리기도 했다.
그는 특히 러시아권에서 인지도가 높았다. 러시아, 카자흐스탄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지난해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김 감독이 주로 해외에 머물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영화 촬영 중 여배우를 폭행·성추행했다는 ‘미투(Metoo)’ 의혹이 터지면서다. 이 여배우는 김 감독을 폭행과 강요 혐의로 고소했고, 여배우·스태프를 성폭행했다는 폭로도 이어지며 그의 이력은 얼룩졌다.
김 감독은 지난 10월 28일 자신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여배우와 관련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해 최근 항소했다.
국내에서 법정 다툼을 이어갔지만 그는 국내에서는 2017년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이라는 작품이 사실상 마지막 활동이었다. 이후 해외를 떠돌았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