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을 처리 중인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라는 제목의 책을 읽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 구성을 둘러싸고 추·윤 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추 장관이 이 책을 꺼내 들어 윤 총장에게 압박성 메시지를 준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검사 출신 이연주 변호사는 자신의 책을 들고나온 추 장관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책을 잘 읽었다거나 그런 말을 전해들은 적도 없다. 읽었다는 것도 몰랐다”며 “저자로서 책이 홍보돼 좋긴 하다”며 웃었다. 이 변호사는 2001년 인천지검 검사로 발령 난 뒤 1년 만에 사표를 냈고, 이후 검찰에 비판적인 발언을 해왔다. 최근 저서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를 내고 검사 실명을 인용하면서 검찰 조직 내 권력 남용, 성범죄, 비리 행위를 잊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전직 검사가 바라본 검찰 개혁, 추·윤 갈등은 어떤 모습일까. 국민일보는 지난 2일, 10일 두 차례에 걸쳐 이 변호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히고 추미애와 윤석열의 갈등 구도만 주목받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감시와 견제에서 자유로운 검찰의 내부 상황을 처절하게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업서 향응 받고 그 기업 법무팀 간 부장검사
-추 장관 덕에 핫해진 화제의 책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를 소개하자면
“대중을 위한 검찰안내서이다. 검찰에 관한 기존 책들은 일반인이 읽기에는 어렵고 딱딱하다. 검찰권이 부와 더 큰 권력을 얻는 수단이 되고, 검찰이 전관 변호사의 놀이터가 된 내부사정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검찰은 선후배 유대관계, 정치·경제계와 커넥션(유착관계)을 맺으며 공고하게 유지된다. 이렇게 감시와 견제에서 자유로운 검찰의 내부 상황은 어떠한지, 처절하게 말하고 싶었다.”
-책의 모태가 된 것은 페이스북에 2018년부터 게시한 글들인데
“유일한 SNS계정이 페이스북이었다. 글을 올리고 불어나는 좋아요, 팔로어 숫자를 보며 검찰의 민낯을 알고 싶어하는 대중의 열망을 느꼈다. 어느 검사로부터 글 좀 그만 쓰면 안 되냐는 말도 들었다. 검찰 간부들이 단톡방에 내 글을 돌려보고, 문제가 될 만한 부분들을 공유하며 욕한다더라. 검찰의 부정부패 사례를 구체적으로 인용한 이유는 일단 재밌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을 부패집단으로 보자는 게 아니다. 100개의 사건 중에 문제의 사건은 1, 2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전관을 변호사로 고용해 압력을 행사해서 판결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의 삶도 얼마든지 뒤틀릴 수 있다. 명예훼손 고소는 두렵지 않았다. 대놓고 지적하니 오히려 겁이 안 나더라.”
-임관한 지 1년 만에 검찰을 떠난 이유가 궁금하다
“2001년 3월 인천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명절날이면 변호사들이 검사들에게 떡값을 주고,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더라. 모 부장검사는 술자리마다 기업 임원을 불러서 지갑을 빼앗아 제 것처럼 썼다. 퇴임 후에는 그 기업 법무팀 팀장으로 가더라. 이러려고 검사가 됐나 고민이 됐다. 모 차장검사는 초임 검사를 불러서 ‘이거 왜 기소한다는 거야. 불기소하라’고 외압을 넣더니 그 자리에서 전화를 넣어 ‘형님, 제가 불러서 잘 지도했습니다’라고 하는 일도 있었다. 그때 29살이었다. 매일 밤 11시에 퇴근해 집에 걸어가면서 울었다. 법조인인 내 삶이 법에서 멀어져 있더라. 몸도 마음도 지하로 꺼지는 듯했다. 저보다 오래 있던 분들은 침묵하더라. 이 조직에 오래 몸담으면 동화돼 문제를 지적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검찰 내 성추행, 직장내괴롭힘이 극심하다고 지적했다. 법조인들임에도 고소·고발이 쉽지 않은 이유는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때문이다. 개인 인권보다는 조직의 위신에 대한 집착이랄까. 찍어누르면 누르는 대로 일을 해야지 저항하면 불편하니까. 검찰이 걸어온 길을 보자. 검찰은 정권의 통치 도구로 협력한 대가로 아무런 통제와 감시를 받지 않고 해방구로 지내왔던 것 아닌가. 그러려면 아랫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못 내고 짓눌려 있어야 한다. 엄격한 상명하복의 조직 질서에 짓눌려 위법하거나 부당한 지시에 굴복하고, 검찰 간부들의 전횡에도 침묵하게 된다. 피해를 겪어도 호소를 못 하는 조직 분위기, 말하면 나만 망가진다는 걸 누구든 알게 된다. 서지현 검사가 얼마나 끔찍한 일(성추행)을 당했나. 장례식장에 있던 검사들이 안태근을 제지하지 못하고 상관인 이귀남 법무부 장관조차 “내가 이놈을 수행하고 다니는지, 이놈이 나를 수행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마디 하는 게 전부였다는데 기가 막힌 일이다. 감찰이 잘 작동했다면 안태근이 잘 나가는 검사라고 대검의 검찰 담당 검사들도 겁을 먹지 않겠는가. 그런데 자기 자신도 겁먹어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하고 동료의 피해에도 눈감는 사람들이 국민의 일에 나설 수 있을까?”
추·윤 갈등은 핵심 아냐…검찰개혁의 본질을 기억해야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는데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히고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 구도처럼 보도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둘이 사각 링에서 1대1 권투 시합하듯 보도되면 말초적인 관심을 자극할지는 몰라도 검찰 권력의 깊은 문제는 잊게 된다. 추·윤 갈등 속에서 누가 물러나도 검찰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염된 토양에서 자라온 나무가 쉽게 바로잡힐까.”
-1996년 참여연대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제안한 이래 20여 년간 공수처법은 추진과 저항의 과정을 반복해왔다
“누가 자기 몸에 칼을 댈 수 있는가. 잘못한 검사가 처벌을 받으려면 공수처를 설치해야 한다. 뇌물을 받아서 기소된 검사는 있어도 사건을 부당하게 처리해서 기소된 검사는 없다. 이 부분은 검찰 조직이 마지막 보루로 스스로 지키는 듯하다. 하지만 결국 역사의 거대한 흐름대로 가야 한다. 이 정권도 검찰을 자기 손안의 칼이라고 믿다가 초반에 검찰개혁을 밀어붙이지 못해서 아쉽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너무 신뢰한 것 아닐까.”
-검찰이 판사 30여명의 주요 판결 내용, 우리법연구회 가입 여부, 가족관계, 개인취미, 세평 등을 조사해 ‘판사 사찰’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판사들의 정보를 수집해서 관리한 곳은 수사정보정책관실(옛 범죄정보기획관실)이다. 수사 정보를 모으는 게 역할인데 업무 외 행위를 한 것이다. 애당초 (옛 범죄정보기획관실 시절)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 자의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우려가 있으니 폐지하라고 권고했더니 검찰 측에서 양질의 범죄정보를 모아야 한다며 반발해서 유지된 곳이다. 그런데 판사를 뒷조사하는 것이 검찰 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모든 판사를 조사한 것도 아니고, 장관 후보자였던 조국 가족을 무리하게 수사하더니 그 재판을 담당한 판사를 조사했다. 이건 인사청문회에 갈 것도 없이 검찰이 장관 후보자를 심사하겠다는 것 아닌가?”
정치 중립적인 윤석열? 검찰 신앙 가진 것
-조국, 추미애 등 전현직 법무부장관들의 가족 수사가 부당하다고 보는 이유는
“수사에는 비례성이 있다. 범죄의 크기에 맞는 인력투입과 속도가 있는 것이다. 동앙대 표창장 위조 의혹 등 조국 일가 수사에는 검사 15명이 투입된 반면 검찰은 라임·옵티머스 수사에 10명을 파견하려 했다. 의학대학원 입시에 쓰이는 상장 조작과 피해금액만 2조원 규모인 사건, 어느 사건이 더 큰가. 누가 봐도 장관 낙마용 수사이지 않나. 죄질에 맞는 수사의 비례성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인사청문회 당일에 조국의 부인을 기소한 것은 자진사퇴를 받아내려는 검찰의 계산이 깔려있었다고 본다. 그때 검찰은 당사자인 정경심 교수를 소환조사도 하지 않고 기소했는데, 자기가 무슨 사건에 연루됐는지도 모르고 재판받으라는 게 말이 되는가. 그랬던 검찰은 과연 자기네 총장이 면담 없이 직무정지를 당했다고 항의할 자격이 있는가. 조민의 고려대 부정입학 의혹 수사도 비열했다. 조민이 2010년 고려대에 제출한 단국대 의학논문에 제1저자로 부당하게 등재했다는 논란인데, 10년 전 일이라 공소시효(업무방해 혐의 7년)도 지나고 고려대의 입시원서 보관 기간도 지나서 들춰볼 것도 없었다. 너무 비열한 수사 아닌가. 추 장관 아들의 휴가 특혜 수사도 마찬가지여서, 이 모두가 검찰이 법무부장관을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날릴 수 있다고 힘자랑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전현직 법무부장관들이 검찰 수사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한 측면도 있지 않나
“칼춤을 추는 상대와 차분한 대화가 되겠는가. 검찰이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할 수사를 해야하는 건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장관들의 대응이 감정적이냐고 묻기 전에 검찰을 비판해야 한다. 개인의 과실보다는 검찰의 무도함이 더 무섭지 않나. 혼외 아들을 들춰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찍어낸 사건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던데, 현재 정부는 그때보다 훨씬 투명하게 검찰과 다투고 있다. 사용연한이 다한 월성 원전 1호기 폐쇄에 대한 수사도 문제적이다. 탈원전은 정부의 정책적인 결정인데, 검찰은 수사권력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가.”
-윤 총장에 대해 날 선 비판이 많더라. 특히 ‘나는 조직에 충성한다’라는 발언을 문제적이라고 지적한 이유는
“대중들은 정치 중립적이라고 봤겠지만 이는 조직 이기주의일 뿐이다. 조직에 충성한다는 건 조직이 절대적 기준이라는 이야기인데, 검찰 신앙과 같지 않은가. 검찰 조직은 기소권을 독점함으로써 스스로 처벌받지 않는다. 내부 감찰을 한다지만 수사 일선으로 언젠간 돌아가야 할 감찰관은 후일 왕따 당할까 두려워 제 식구를 제대로 감찰하지 못한다. 일례로 2010년 10월 안태근 전 검사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했는데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최교일(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나서서 무마하려다 적발되지 않았나? 이렇듯 2000여명의 전국 검찰들은 한다리 건너며 다 아는 사이라서 학연·지연·근무인연도 강하고 제식구 봐주기가 횡행한다. 이런 조직에 충성한다는 말은 위험하다. 지난 2012년 검란을 기억하는가.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이 정권의 칼처럼 활용되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를 폐지한다니까 최재경(당시 중수부장) 및 윤 총장(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언론플레이로 검찰총장도 쫓아낸 사람들이다. 상관인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을 징계하는 건 안 되고, 후배인 자신들이 총장을 몰아내는 건 괜찮은가.”
-조국 가족수사, 추·윤 갈등을 거치면서 검찰개혁의 취지는 잊힌 듯하다
“바다는 강물을 거부하지 않는다. 결국은 사필귀정이라고 믿는다. 윤 총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검찰개혁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추 장관이 이긴다고 해서 검찰개혁이 더 수월할 것도 없다. 해야 할 과제는 앞으로도 많고 굽이굽이 가야할 길도 멀다. 하지만 결국 나침반을 쫓아 바르게 갈 거라고 믿는다.”
이연주 변호사에 대해 독자들은 ‘고작 1년 근무했다’ ‘오래전 이야기를 말하지 않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독자 반응에 대한 이연주 변호사의 입장을 물었다.
-1년 경력으로 검찰 전체를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있다
“변호사를 하면서 법원과 검찰의 모습을 오히려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근무해서 조직에 동화되기에 이르면 조직의 행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떨어져 있기에 오히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년 전 검찰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지 않을까
“20년 전과 단순비교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검찰은 민주정부 하에서는 청와대와 거리를 두고,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는 통치의 협력자 역할을 해왔다. 물론 민주적인 정부에서 검찰과 거리두기를 하는 것은 정권의 의지에 의한 것이지 검찰권의 자기반성이나 결단으로 된 것은 아니다. 정치검찰의 행태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정권에 협력하는 모습을, 지금은 선출권력을 위협하는 검찰정치의 모습을 보인다고 본다. 검찰은 정권의 통치도구로 협력한 대가로 통제와 감시가 미치지 않는 해방구로 지내왔던 것이며 당연히 내부에는 부패와 비리가 번성하게 된다. 공정과 정의는 돈이 되지 않고, 현직 검사와 전직 검사가 법을 농락함으로써 돈을 버는 거다. 검찰도 변하기는 하지만, 폐쇄된 조직이므로 변화의 속도가 국민의 요구와 기대를 못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20년전보다 검찰이 특별히 개선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