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보자(Let’s Wait and See).” 누군가를 윽박지르는 말이 아니다. 20년 전 유럽에 발 디딘 소프라노 임선혜가 자신에게 줄곧 되뇌던 문장이다. 연출가에게 동양인이라며 차별받거나 조명이 꺼진 무대 뒤편이 쓸쓸하게 느껴질 때, 혹은 성악가의 꿈이 흔들릴 때, 그는 머지않을 미래의 임선혜를 기약했다. 그리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이 어떤 틀로 규정할 수 없는 소프라노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렸다.
올해로 유럽 데뷔 20주년을 맞은 ‘고(古)음악의 디바’ 임선혜를 10일 전화로 만났다. 소회를 묻는 첫 질문에 그는 “어디 머물다가 또 다른 곳을 향하는 바람처럼 흐르듯 지난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늘 곁에 ‘사람’이 있었다. 소중한 인연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힘줘 말했다.
유럽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는 국내 성악가가 많지 않던 2000년 1월 임선혜는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가 1999년 스물세 살의 나이로 고음악 거장 필립 헤레베헤에게 발탁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벨기에 브뤼셀 무대에 ‘대타’로 급하게 선 유학생 임선혜는 기차를 타고 가는 7시간 동안 모차르트 C단조 미사를 달달 외워 아름다운 무대로 지휘자 헤레베헤를 사로잡았다.
지난달 8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콘솔레이션홀에서 열린 콘서트 ‘바람에 실려 온 노래들’은 20년간의 여정을 풀어놓는 자리였다. 당초 상반기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연기와 취소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마음을 접고 출국했던 임선혜는 10월 재입국해 자가격리 14일 동안 급히 준비된 공연장을 화상으로 살피며 프로그램을 새로 다듬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 후배 아티스트와 꾸민 이날 무대는 게스트 등이 비밀에 부쳐졌는데도 팬들로 북적거렸다. 한해 50~60차례 공연이 올해 5개로 줄었다는 임선혜는 “안전하게 노래할 수 있는 고국이 자랑스러웠다”면서 “새 시작점 앞에서 숨을 고르는 ‘쉼표’ 같은 공연이었다”고 떠올렸다.
해외 고음악 전문 연주 단체를 초청해 국내에 소개해온 대표 축제 ‘한화클래식 2020’도 올해 임선혜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12일과 16일 무관중 생중계하는 한화클래식은 임선혜를 주축으로 국내 유수의 바로크 아티스트가 모여 바흐 협주곡과 결혼 칸타타,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 콘서트 오페라를 선보인다. 코로나19로 한국 예술가들이 꾸미게 된 올해는 국내 고음악의 현주소를 증명하는 공연이라서 더 큰 관심이 쏠려 있다. 임선혜는 “10년 동안 수많은 연주단체가 생긴 국내 고음악계는 빠르게 발전했다”며 “동양의 고음악도 뛰어나다는 사실을 해외에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작곡 당시 악기·주법으로 연주하는 고음악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긴 임선혜가 그려온 음악의 궤적은 단선적이지 않다. 국내외 예술가곡도 꾸준히 선보였던 그는 뮤지컬 ‘팬텀’에 출연하고 국내 드라마 OST에도 참여했다. 모두 “호기심 천국 같은 성격”으로 일군 성과였다. 최근 발매된 후기 낭만파 작곡가 어빈 슐호프의 가곡 전집에 해외 성악가들과 참여한 임선혜는 전체 80여곡 중 절반 정도를 불렀다. 사실상 첫 가곡 앨범을 발표한 임선혜는 “앞으로 가곡을 많이 부르고 싶다”면서 “방탄소년단이 K팝을 알린 것처럼 다음에는 한국 가곡을 불러 우리 음악을 해외에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임선혜는 이날 한화클래식에 같이 오르는 바리톤 김기훈 등 동료를 소개하고 칭찬하는 데 인터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고음악에 매료된 이유가 사람이 좋아서라는 그의 고백과도 맞아 떨어졌다. 그는 “고음악은 연주단 규모가 비교적 작아 눈짓·몸짓 등으로 긴밀하게 음악적 소통을 한다. 그래서 즐겁다”고 말했다.
‘사람’을 중시하는 태도는 어린 시절 스승 테너 최대석을 비롯해 소프라노 박노경, 바리톤 롤란트 헤르만 등 은사에게 배운 가치이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20년간 희로애락을 나눴던 헤르만의 타계는 그에게 큰 고통이었다. “명랑 유쾌한 딸로부터”라고 쓴 임선혜의 메일에 헤르만은 늘 “선혜의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라는 맺음말을 단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고 한다. 노래는 물론 인생의 스승이었던 그를 되새길수록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스승의 삶이 마음에 아로새겨졌다. 임선혜는 “선생님은 브라질 빈민촌 학교 사업에 가장 많이 후원하는 기부자였을 정도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다”며 “인생의 스승인 선생님의 타계는 내 삶을 깊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다른 이들보다 앞서 유럽 무대를 누빈 중견 성악가로서 책임감이 크다. 후배가 활약할 토양을 다지는 게 현재 그의 목표 중 하나다. 무엇보다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팬들에게 더 많이, 오래 들려주는 게 성악가로서의 일이라고 했다. “악기보다 목소리는 수명이 짧은 편이지만, 소중히 관리해서 다음 20년이 될 때까지 관객들을 만나고 싶어요. 팬들과 소통도 지금보다 더 많이 하고 싶고요. 지켜봐 주세요(Let’s Wait and See).”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