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입주민 ‘유죄’ 만든 경비원의 음성유서 3개

입력 2020-12-10 16:01
아파트 경비원 폭행 혐의를 받는 입주민 심 모씨가 지난 5월 22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서울 도봉동 서울북부지방법원을 나서 경찰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경비원 최모씨가 머물던 경비실 앞 추모 공간. 뉴시스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로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심모(48)씨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반성 없는 모습으로 일관한 그의 유죄를 만들어낸 건 피해 경비원인 고(故) 최희석씨가 남기고 간 음성 유서였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 13부(허경호 부장판사)는 1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보복감금·보복폭행·상해), 무고, 협박 등 7개 혐의로 기소된 심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지난 4월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에서 최씨와 주차문제로 다툰 뒤 지속적인 폭언·폭행을 한 혐의다. 계속되는 괴롭힘에 최씨는 결국 지난 5월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재판부는 심씨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심씨가 지난 7일 결심공판에서 “고인을 때리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 적 없다. ‘머슴’이라는 표현도 쓴 적 없다”며 거듭 부인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같은 판단에는 최씨가 극단적 선택을 앞두고 직접 녹음한 각 15분 분량의 음성 유서 3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음성파일에서 최씨는 “심씨에게 맞으며 약으로 버텼다. 밥을 굶고 정신적인 스트레스. 얼마나 불안한지 아느냐”며 “심씨가 ‘너 이 XX 고소도 하고 돈도 많은가보다. 그래 이 XX야, 끝까지 가보자. 네가 죽던가 내가 죽어야 이 싸움이 끝난다’는 폭언을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씨가 최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 뉴시스

또 심씨에게 당한 피해를 설명하면서는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사직서 안 냈다고 (심씨가) 산에 가서 백대 맞자고, 길에서 보면 죽여버린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겠다고 했다”며 “고문을 즐기는 얼굴이다. 겁나는 얼굴”이라고 호소했다. 이외에도 심씨에게 폭행당한 날의 상세한 정황과 협박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이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심씨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부탁까지 담겨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음성들은 최씨가 사망하기 6일 전 녹음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심씨로부터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받은 당일이다. 당시 심씨는 자신의 일방적 폭행이 아닌 쌍방폭행을 주장하며 “수술비 2000만원을 만들어 놓으라”고 썼다. 그러면서 “친형에게 폭행당해 코뼈가 내려앉았다고요?” “머슴의 끝없는 거짓이 어디까지인지 용서할 수 없다” “무슨 망신인지 모르겠다” “코가 부러졌으니 내일부터는 근무도 못 할 것” 등의 조롱성 발언을 했다. 그러나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뒤에도 심씨는 “최씨의 코뼈 골절은 자해에 의한 것”이라며 억울하다는 취지의 진술을 반복했었다.

이날 재판부는 “증거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자신을 경찰에 고소한 피해자에게 보복할 목적으로 지난 4월부터 5월 사이 피해자를 경비실 화장실에 감금하고 상해를 가한 점이 인정된다”며 “도망가는 피해자를 쫓아가 화장실 문을 막아선 뒤 대화를 하자는 이유로 피해자가 벗어나지 못하게 한 행위 역시 감금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14일 오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다 주민 괴롭힘에 극단적 선택을 한 최모씨의 유족들이 노제를 지내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이 사건 이후 피해자는 병원을 찾아 뇌진탕, 코뼈 골절 등으로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며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해했거나 제3자로부터 상해를 당했을 수도 있다고 진술했지만 근거가 없고,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피고인의 추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사표를 쓰라고 협박한 혐의도 부인했으나 당시 상황이 담긴 녹취록을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 ‘경비가 주민을 고발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등 피해자가 자신을 신고한 사실을 탓하는 내용이 다수 확인된다”며 “이를 모두 종합해보면 범행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보복할 목적이 있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심씨는 지난 4월 21일 최씨가 아파트 주차장에 3중 주차돼 있던 자신의 승용차를 손으로 밀어 이동시켰다는 이유로 최씨를 때린 혐의 등을 받는다. 또 같은 달 27일 최씨가 자신의 범행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복할 목적으로 최씨를 경비실 화장실로 끌고 가 약 12분간 감금한 채 구타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최씨는 이로 인해 3주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비골 골절상 등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검찰은 심씨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