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레 피해자 보호 소홀,
정밀 조사 기회 날릴 우려
서울시가 ‘박원순 성추행 의혹’ 7개월 만에 재발 방지 대책을 내왔다. 시장 성추행 건에는 아예 관여하지 않고 경찰이나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에서 다루게 한다는 게 골자다. 시장 성추행 문제에는 사실상 손을 떼겠다는 것이라 “성추행 대응 책임회피”라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시 성차별·성희롱 근절 특별대책위원회는 10일 온라인브리핑에서 성희롱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8월 외부전문가와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등 15명이 대책위를 꾸린지 약 4개월 만이다.
특별위는 시장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별도의 외부절차를 통해 조사·처리하는 것을 제도화하기로 했다. 기존 내부견제 수단을 폐기하고 외부 조사에 의존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이 사건을 인지한 뒤 여성가족부에 통지하면 경찰이나 인권위가 수사·조사한다.
서울시는 사실상 시장 성추행 사건에 손을 떼게 된다.
하지만 이는 ‘성추행 사건의 책임 있는 처리’를 약속해온 서울시 원칙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직원 성추행 사건에 대해선 지금도 “직접 책임지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명시하고 있다. 시장과 직원 간 이중잣대를 들이댄 셈이다. 서울시는 “내부 직원이 시장을 견제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그렇더라도 서울시가 시장 성추행 건에서 아예 손을 떼는 건 ‘퇴보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내부 대응 절차만 사라졌다는 뜻이다. 피해자가 경찰이나 인권위에 수사·조사를 요청하는 건 원래부터 가능했던 사안이다. 되레 피해자 보호가 소홀해지고, 내부 정밀 조사 기회가 사라지는 ‘개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서울시는 “사건이 외부로 넘어가더라도 피해자 보호는 철저히 할 것”이라고 했다.
특별위는 시장 성추행 건과 달리, 직원 성추행 건에는 서울시가 적극 개입하도록 했다. “‘내부(조사)=은폐, 외부=공정이라는 공식은 부적절”이라며 “서울시가 직접 책임지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이 성희롱 없는 직장환경 조성에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 피해자가 외부 수사기관에 신고한 경우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원하면 수사와 병행해 내부에서도 사건처리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피해자 주변인들의 대응수칙은 언급되지 않았다. 즉 피해자가 주변인에게 성추행 고민상담을 했을 때 주변인이 적극적으로 도와줄지 가만히 있을지 불분명하다. 앞서 박 시장 성추행 의혹의 피해자 동료들이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아 “성추행을 묵인·방조했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한편 특별위는 시장 사건 신고 접수 시 직무배제 요건 및 절차가 법적으로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논란이 됐던 시장 비서실의 기능과 구조도 개선하기로 했다. 비서실 직원을 일반 직원과 동일하게 희망전보 절차를 통해 선발하고, 성평등한 인력배치와 업무분장을 실시한다. 또 시장실 내 수면실을 없애고 ‘비서분야 업무지침’을 마련한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관리가 미흡했던 별정직 및 임기제 공무원에 대한 교육이수 현황을 별도 관리하고 특히 시장단 비서실 직원에 대해서는 성인지·성폭력 예방교육 100% 이수 의무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신분노출을 우려해 내부 상담을 꺼리는 피해자를 위해 민간 성폭력 상담소 등 외부 전문기관을 지정해 피해자가 선택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복잡했던 성희롱 사건처리 절차를 여성가족정책실 여성권익담당관으로 일원화해 신고부터 징계까지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