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순간, 대한민국 헌법 1조를 이렇게 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문주(文主)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문님’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문빠’들로부터 나온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을 두고 9일 오후 9시부터 10일 0시까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진행된 가운데 첫 주자인 김기현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자 여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4선 중진인 김 의원은 검은 마스크에 ‘근조’ 리본을 달고 단상에 올랐다. 그는 공수처에 대해 “누가 뭐래도 ‘문재인에 의한, 문재인을 위한 비리 은폐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이 대표적 정권 연루 의혹 사건으로 지목하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당시 울산시장 출신이기도 하다.
김 의원은 “국민 한 분 한 분이 당당한 주권자 자격이 있지만 현실은 통치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돼버렸다”며 “통치의 주체 자리는 대통령과 집권당 의원들이 차지했다. 일반 국민은 그저 가재·붕어·개구리, ‘가붕개’로 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국회 시스템은 통째로 바뀌고 불법과 부정이 합법으로, 정의로 가장하고 둔갑한다”며 “문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무시하면서 꼼수와 편법으로 국민을 무시하고, 야당을 패싱하고 입법 폭주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권자인 국민이 개, 돼지 취급을 받고 법치가 사라졌다.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를 말하는데, 집권세력은 ‘법을 이용한 지배’를 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가장 사악한 형태의 ‘인치주의’”라고 질타했다.
이어 “권력자는 표창장을 위조하고, 서로 짜고 봐주기 면접을 해 대학에 진학시켜 자식들을 출세시켜도 죄가 없다”며 “일반 국민들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하려고 뼈 빠지게 일하는데 법을 날치기해서 집값, 전셋값을 폭등시켰다”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서는 “저는 여러분이 대한민국 국민의 국회의원인지,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 머슴인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며 “여당 당원이란 신분이 우선인가, 국회의원이란 신분이 우선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민주당 쪽에서는 이따금 항의성 고성이 터져나왔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이날 오후 2시 열리는 본회의에서 통과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새로 열리는 임시회에서 국정원법,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법 등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 경우 민주당은 재적 의원 5분의 3(180석) 이상의 찬성으로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국정원법과 남북관계발전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종료시킨 뒤 차례로 표결에 부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국민의힘은 표결을 보이콧할 것으로 예상된다. 심한 경우 또다시 여야 간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