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스케치하는 웹툰…‘바이러스’까지 창궐하다

입력 2020-12-09 16:57 수정 2020-12-09 18:27
웹툰 '바이러스X'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제공


어느 날 사망률 100%의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감염자는 배꼽부터 까만 반점이 퍼져나가다가 결국 온몸이 새까매져 죽음에 이른다. 치료제도 백신도 감염 경로도 알 수 없는 의문의 병. 번창하던 공동체는 부지불식 간에 바스러진다. 나부터 살자는 이기주의가 횡행하고 거리에는 약탈과 폭력이 난무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의 우리를 반추하게 하는 이 섬뜩한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네이버웹툰 ‘바이러스X’에 담겨 있다.

주로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인기를 끌던 웹툰은 이제 시대상을 스케치한 작품들로도 사랑받고 있다. 웹툰이 주 소비층인 1020 세대를 넘어 세대를 아우르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면서 장르도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담은 웹툰이 등장해 독자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다.

‘바이러스X’가 바로 현실감 넘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코로나19가 움트던 10월 중순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시국을 고스란히 옮긴 듯한 스토리가 입소문을 타면서 두 달 만에 50개 웹툰이 경쟁하는 요일별 순위 6위에 올랐다. 작품에는 덥다며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거나 방역수칙을 무시한 채 클럽에서 파티를 벌이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여러 인물 군상이 이어진다.


웹툰 ‘멸종인간’의 한 장면. 다음웹툰 제공


같은 플랫폼에서 8월 연재를 시작한 김용키 작가의 ‘관계의 종말’이나 9월부터 선보인 김규삼 작가의 ‘데드퀸’도 등장 직후 요일별 랭크 톱5 안에 자리잡았다. 음울한 정서가 두 작품을 관통한다. 고시원의 끔찍한 이야기로 OCN에서도 리메이크 된 ‘타인은 지옥이다’ 원작자인 김용키 작가는 ‘관계의 종말’에서 펜션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휴가가 지옥으로 변하는 과정을 하드보일드하게 그려낸다. 전작 ‘하이브’의 세계관을 이어받은 ‘데드퀸’은 거대해진 곤충들이 인간을 습격하면서 위기에 몰린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음 화요일 웹툰 ‘멸종인간’도 어두운 세계관으로 인기몰이 중인 웹툰이다. 작가의 ‘관찰인간’ ‘생존인간’을 잇는 시리즈로 인간을 흡수해 살아가던 특수종 ‘번인’들이 정체를 드러내 인간을 정복한다는 얼개다. 지난해 6월 연재를 시작해 탄탄한 서사와 액션, 그로테스크로 화제를 모았는데 최근 들어 불이 붙는 모양새다. 9일 기준 22계단을 올라 7위에 올랐다.

당초 웹툰 뼈대 장르는 일상물이나 로맨스·액션·판타지 등 장르물이었다. 웹툰 통계 사이트 웹툰인사이트에 따르면 네이버웹툰에서 지금까지 연재된 624개의 작품을 13개 장르로 분류했을 때 판타지와 액션(약 15%), 로맨스(약 10%)를 합치면 전체 4분의 1인 25%에 달했다.


웹툰 '참교육'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제공


그런데 최근에는 사회 이슈에 바짝 붙어있는 작품이 하나둘 고개를 들고 있다. 11월 1일 네이버에서 연재를 시작해 바로 월요일 2위에 올라선 ‘참교육’이 대표적이다. 2011년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관련 조항 개정 이후 체벌이 금지되고 교권이 붕괴되자 법을 개정, 체벌이 가능한 교사를 학교로 파견보낸다는 이야기다. 현실에선 용인되기 힘든 이야기로 논쟁 거리가 다분하다. 다만 주인공 교사가 초점을 맞춘 대상이 학교폭력 가해자들이다. 실제 학교에서 생활하는 1020 세대가 주 독자층인 네이버웹툰 플랫폼을 겨냥한 작품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들이 점차 활기를 띨 것으로 봤다. 앞서서도 사회 초년생의 고충을 다룬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나 노동 현실의 병폐를 파고든 최규석 작가의 ‘송곳’, 남북 문제를 상상력으로 그린 양우석 감독·제피가루 작가의 ‘스틸레인’ 시리즈가 인기리에 독자들을 만났다. 한 관계자는 “웹툰 플랫폼이 커지면서 여러 색깔의 작가들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면서 “소비자 취향이 분화되는 만큼 무게감 있는 작품들도 더 많이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