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제 의지로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정조국(36)의 표정은 밝았다. 은퇴를 발표한 뒤 세 아이를 돌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 그는 몸은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은퇴 결정까지 많이도 망설였지만, 스스로 아름답게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고도 설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 축구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그만큼 굴곡도 컸던 그였기에, 축구화를 벗는 결정은 더욱 쉽지 않았을 터였다.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 공격수 정조국은 9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지난달 30일 K리그2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으며 은퇴식을 한 뒤 처음 참석하는 공식 석상이었다. 검정 넥타이와 양복, 구두로 말쑥하게 차려입은 정조국은 이날 회견에서 그간 선수 생활의 소회와 가족과 팬, 동료와 은사들을 향한 감사를 전하며 앞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밝혔다.
정조국은 한국 축구의 대표적 공격수로서 K리그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2003년 안양 LG(현 FC 서울)에서 데뷔해 현 소속팀 제주 유나이티드에서까지 392경기 121골을 넣었다. 데뷔 시즌부터 12골 2도움으로 신인왕을 차지했고, 서울을 떠난 뒤 2016년 광주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20골 1도움으로 득점왕과 리그 최우수선수(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K리그에서 신인왕과 MVP, 득점왕을 모두 차지한 선수는 현재까지 신태용과 이동국, 정조국뿐이다.
그는 앞서 이동국 등이 이어온 한국 정통파 중앙공격수 계보를 잇는 선수이기도 했다. 정조국이 득점왕을 차지한 2016년 이후 K리그 득점왕은 모두 외국인 선수들이 차지했다. 근 10년으로 범위를 넓혀도 정조국 이외 K리그 득점왕에 오른 국내 선수는 김신욱뿐이다. 비교적 전력이 약했던 광주 FC 소속으로 이뤄낸 기록이라 더 의미가 깊다. 다만 이름을 날렸던 청소년대표 시절과 달리 성인대표팀에서는 월드컵에 번번이 선발되지 못하며 고배를 마셨다.
정조국은 선수 생활 중 극적인 반전을 이뤄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평생 뛰었던 서울 구단에서 벤치로 밀려난 와중 큰아들이 “아빠는 왜 안 뛰어”라고 묻는 말에 충격을 받아 광주로 이적, 절치부심한 끝에 화려하게 부활한 이야기는 국내 축구팬들에게 유명한 일화다. 정조국은 당시를 떠올리며 “아직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망설일 것 같다. 서울이라는 팀은 제게 첫사랑이나 다름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광주 이적 첫 경기에 딱 세 시간 밖에 못 자고 뛰었던 게 기억난다. 대표팀에서보다 더 긴장했다”면서 “축구 인생 모든 걸 걸어야 했다. 광주에서 잘 안 되었다면 이런 자리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조국은 당시 자신처럼 힘든 상황에 부닥친 후배들에게 “그때 저는 쫓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쫓길 수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으려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내인 배우 김성은과 그는 국내 대표적인 스포츠선수-연예인 커플이기도 하다. 정조국은 “제가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결혼”이라면서 “그동안 누구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린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축구선수로서 정조국의 가장 큰 팬인 아내가 가장 아쉬워했다. (은퇴발표를 한)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는 영상을 보며 혼자 오열했다더라”면서 “아직 어린 셋째가 아빠가 뛰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고 말했다.
정조국은 선수 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나는 골을 묻는 질문에 프로 데뷔골을 꼽았다. “당시 데뷔 10경기 가까이 골을 못 넣던 상황에서 페널티킥이 나오자 키커였던 동료 마에조노에게 공을 뺏어 골을 넣었다. 그 골이 없었다면 훨씬 어려웠을 것”이라고 기억했다. 가장 멋진 골로는 “청소년대표 시절 상암(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중국전에 넣은 하프발리 골이 가장 멋졌던 것 같다”면서 “지금 해보라고 하면 못한다”고 웃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정조국의 팬과 동료, 은사들이 감사와 축하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달했다. 정조국이 뛰었던 광주와 강원 FC 팬을 비롯해 박주영과 오범석, 차두리와 김진규, 남기일 현 제주 감독이 그의 앞길을 축복했다. 과거 신인 시절 그를 지도한 조광래 현 대구 FC 대표이사도 영상 메시지를 보내 “조국아 그동안 고생했데이”라며 그를 격려했다.
정조국은 향후 진로로 지도자를 택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게 뭔가를 생각해봤을 때 종착점이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급하게 마음먹지 않으려 한다.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도록 조언도 구하고 자신에게 더 많은 채찍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능 등 축구 이외 활동에 대해서는 “개인 성향에 잘 맞지 않기도 하고, 감독을 하려면 선수들이 보기에 카리스마나 무게감도 갖춰야 할 것 같다”면서 지도자 경험을 쌓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