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광주FC가 창단 10년 만에 깊은 수렁에 빠졌다. 대표이사 사장부터 단장, 감독까지 수뇌부가 공석이 되면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 2013년 6월부터 광주FC를 이끌어온 정원주 대표이사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9일 밝혔다.
정 사장은 올해 들어 사무국장 등 임직원 초과근무 수당 부정수급과 기영옥(63) 전 단장 횡령의혹 등 내부 문제가 잇따라 불거진 데 책임을 통감한다는 태도다.
정 사장의 거취는 이사회와 구단주인 이용섭 광주시장의 의지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 정 사장이 물러나면 광주FC는 2010년 창단 이후 처음 주요 집행부가 한 명도 없는 처지가 된다.
이사회 이사 중 연장자가 대표이사 직무대행으로 구단을 꾸려가야 할 상황이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 현재 단장 역시 공무원 신분인 광주시 김준영 문화관광체육실장이 지난 1월부터 형식적으로 대행하는 데 그치고 있다. 문화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시의 문화 행정을 사실상 총괄하는 중책이어서 축구단 운영에 매달리기가 쉽지 않다.
광주FC 운영의 난맥상은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다가 국가대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출신 미드필더 기성용 부친인 기 전 단장이 2018년 10월부터 지난 2월까지 구단 광고수입 통장에서 3차례에 걸쳐 3억3000만 원을 임의로 빼썼다가 갚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2015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광주FC 단장을 역임한 기 전 단장은 “개인적으로 급하게 돈을 쓸 일이 생겨 광주FC 예산을 일부 빼서 사용한 뒤 상환했을 뿐 횡령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광주시 지원 보조금이 아니어서 사무국 직원을 통해 임시방편으로 돈을 인출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전액을 다시 입금했다는 설명이다.
기 전 단장은 광주시 감사위원회와 시 체육진흥과 수사 의뢰에 따른 경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는 자세를 보인다. 회계 규정을 위반했을 뿐 무보수 단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구단 예산을 사적으로 빼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 전 단장이 재직 당시 공모절차도 밟지 않고 무기계약직 직원을 특채하고 더 많은 연봉을 지급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더해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일 부산 아이파크 프로축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결과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는 광주FC 야전사령관 자리도 비어 있다.
계약 기간이 1년 정도 남은 광주FC 박진섭(43) 감독은 구단 측과 계약을 해지한 뒤 지난 8일 3년 계약 기간의 FC서울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겼다.
광주FC는 2021년 12월 말까지 계약 기간이 남은 박 감독과 상호 합의에 따라 박 감독에게 앞길을 터줬다.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지휘봉’을 잡아 온 감독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광주FC는 당장 내년 시즌에 대비해 이달부터 시작되는 동계훈련부터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박 감독은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킨 뒤 창단 처음으로 6개 팀이 출전하는 파이널까지 진출시켰으나 홀연히 광주FC를 떠났다. 지난 2017년 12월 광주FC 감독으로 영입된 그는 당시 2부리그에 있던 팀을 2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었고 올 시즌 1부리그 승격 이후 6승 7무 승점 25점의 성적으로 파이널A 무대를 밟았다.
앞서 지난 8월에는 사무국장 등 직원들이 ‘시간 외 수당’ 등을 관행적으로 부풀려 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퇴근 후 놀다가 사무실로 돌아와 지문을 찍고 매달 100만 원이 넘는 수당을 챙겼다는 것이다.
1만9068명의 시민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프로축구 K리그 16번째 구단으로 창단한 광주FC는 지난 2015년에는 박 모 단장이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했다가 불명예 퇴진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선수들의 급여체납으로 급하게 은행대출을 받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광주FC는 대표이사 사퇴 의사와 감독의 이적 등 내홍을 벗어나기 위해 신임 감독 후보군을 압축하고 연봉협상을 거쳐 외국인 선수 재계약을 검토하는 등 자구책을 서두르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해 여전히 진퇴양난이다.
광주FC는 코로나 19 여파에 따라 해외 전지훈련을 취소하고 오는 21일부터 국내 훈련에 돌입한다. 내년 1월 8일 까지 광주에서 1차 훈련을 한 뒤 1월 11일~29일 남해(2차), 2월 1일~10일 여수(3차), 2월 15일~26일(광주) 일정으로 동계훈련을 진행한다. 광주시는 올해 광주FC에 75억 원을 운영비로 지원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정 대표이사의 사퇴를 만류하고 있다”며 “광주FC의 정상 운영을 위해 다음 주까지 재창단 수준의 특별한 혁신·쇄신 대책을 세워 시민구단의 정신을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