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치기 당한 꼴 ‘尹 찍어내기’… 수사 선상 오른 법무부

입력 2020-12-08 17:54

대검찰청의 윤석열 검찰총장 수사의뢰 사건 서울고검 재배당은 결국 윤 총장에 대한 수사가 위법하게 이뤄졌다는 인권정책관실 진상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대검이 이 진상조사 결과까지 서울고검에 ‘수사참고자료’로 넘기자 법조계에서는 “윤 총장이 아니라 거꾸로 대검 감찰본부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서울고검의 진상조사 범위가 대검 감찰본부뿐 아니라 대검 감찰본부로 하여금 윤 총장을 수사토록 한 법무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검 인권정책관실이 8일 밝힌 진상조사 결과의 핵심은 대검 감찰본부가 윤 총장 수사에 착수한 배경이 일종의 자작극이었다는 것이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과거 ‘불상의 경로’로 입수해 가지고 있던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을 법무부에 전달했고, 이를 다시 법무부로부터 수사참고자료로 되돌려 받았다. 그간 대검 감찰본부는 지난달 24일 법무부로부터 전달받은 수사참고자료를 토대로 ‘인지사건’ 수사 착수를 결정, 법원으로부터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설명해 왔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렇게 문건이 오가는 과정이 ‘윤 총장 찍어내기’를 위한 의도적 행위였다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감찰·수사 필요성이 있는 증거를 발견했다 해도 이를 기관 간에 주고받을 때는 업무협조 요청이나 수사의뢰 절차를 정식으로 밟았어야 한다는 얘기다. 압수수색에 참여했던 허정수 대검 감찰3과장도 한 부장이 애초 이 문건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문제를 인식한 뒤 최근 조남관 차장검사를 면담해 “수사를 중단하겠다”고 스스로 밝혔다.

법무부가 대검 감찰본부의 압수수색을 지휘했다는 논란도 조사 결과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다.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 관계자들은 수사 인력들이 법무부 측과 대화하는 장면을 기록까지 해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 관계자들이 첩보를 전달한 쪽에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가며 압수수색을 하는 일이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었다. 반면 당시 검찰 지휘권자였던 조 차장검사는 보고를 제때 받지 못해 윤 총장이 성명불상자로 입건된 사실조차 몰랐다.


서울고검은 기록을 검토하는 대로 한 부장이 문제의 문건을 입수한 정확한 시점과 경로부터 확인할 방침이다. 문건이 오가는 과정에 법무부 수뇌부가 관여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검찰 내부에서 나온다. 이정화 검사의 의사에 반해 삭제된 감찰기록이 대검에 이관돼 수사에 활용됐는지의 여부도 짚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간부는 “아무 자료가 없는 이에게 ‘사정이 이러하니 수사하라’며 건넨 기록이 의도적으로 수정됐다면, 이는 수사팀 기망”이라고 했다.

한 부장은 인권정책관실의 진상조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허 과장 역시 진술서는 제출했지만 압수수색이 이뤄진 지난달 25일 통화기록 등은 삭제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윤 총장 수사의뢰 사건이 대검 감찰본부를 떠나 서울고검으로 재배당되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향후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추 장관이 또다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토록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대검은 추 장관의 ‘조치 강구’ 입장에 대해 “법무부가 지금이라도 특임검사 임명 요청을 승인하면 따르겠다”고 밝혔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