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플랫폼’으로 변한 영화관 ‘출구 전략’

입력 2020-12-08 13:24 수정 2020-12-08 14:37
CGV 제공


9일 드라마 ‘이별유예, 일주일’이 공개된다. 다름 아닌 극장에서다. 배우 권유리(소녀시대) 현우 주연의 이 판타지 로맨스물은 147분짜리 영화 버전이 CGV에서 먼저 개봉한 후 10부작으로 12월 SBS 케이블 채널과 OTT 플랫폼에서 선보인다. 드라마 전체를 편집한 극장판 상영은 이번이 처음이다. CGV 관계자는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 극장의 공간적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극장이 ‘영화의 전당’이라는 인식이 희미해지고 있다. 불을 댕긴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다. 영화관에는 훗날을 기약한 신작 대신 뮤지컬·연극·오페라·클래식 같은 공연과 게임·스포츠 등 문화레저 콘텐츠가 들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트렌드가 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처럼 극장도 콘텐츠 유통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선두 CGV는 지난 6월부터 대체 콘텐츠 발굴팀 아이스콘을 가동해 각종 공연과 강연, 북토크를 극장과 연계해 선보이고 있다. 근래 화제를 모은 트로트 가수 김호중의 첫 팬미팅 무비 ‘그대, 고맙소’와 방탄소년단의 웸블리 스타디움 투어를 담은 다큐멘터리 ‘브레이크 더 사일런스: 더 무비’도 아이스콘 주도로 선보인 콘텐츠들이다. 이들은 코로나19 여파에도 각각 관객 10만명, 13만명을 동원했다. 메가박스는 지난달 6개 지점에서 인기 드라마 원작의 ‘배드 지니어스 더 시리즈’를 국내 최초 릴레이 상영해 인기를 끌었다.


메가박스 제공


올해 특히 급물살을 탄 콘텐츠는 공연 실황이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는 그동안 꾸준히 공연 실황을 선보여 왔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한 올 초부터 그 빈도가 부쩍 늘었다. 1월 월간 오페라를 시작한 CGV는 7월과 11월 각각 월간 뮤지컬과 월간 클래식을 추가 기획해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클래식 ‘레전더리 콘서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을 공개했다. 롯데시네마 ‘오페라 인 시네마’에서는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 등 스테디셀러가 지난 3월부터 선보였다.

앞서 공연 큐레이션 프로그램 ‘클래식 소사이어티’를 적극적으로 선보여온 메가박스는 2021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등 굵직한 콘텐츠들을 준비 중이다. 영화·다큐멘터리·콘서트·연극 등 콘텐츠를 6000원에 상영하는 ‘N스크린’ 프로젝트도 진행하기로 했다. 이미 지난 3일부터 12월 라인업으로 전국 20개 지점에서 영화 ‘용루각: 비정도시’와 ‘오케이 마담’에 더해 다큐멘터리 ‘증발’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가 저렴한 가격에 차례차례 관객을 만나고 있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에서 영화관·제작사·투자사·배급사가 상생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라며 “향후 여러 갈래의 장르를 발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KBO 제공


생동감 넘치는 영화를 위해 멀티플렉스가 구축한 인프라는 코로나19 시대 핵심 기술로 부상한 ‘실감 콘텐츠’ 구현에도 안성맞춤이다. 관객 호응도 상당하다. 지난 10월 3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롤드컵 결승전 생중계는 CGV가 마련한 3700여석이 전부 팔려나갔다. 이날 전국 38개 스크린X관에서는 한국 담원 게이밍과 중국 쑤닝 게이밍의 한·중전이 3개 스크린(전면, 좌우)으로 박진감 넘치게 펼쳐졌다. 앞선 8월 CGV는 물·바람·진동 등을 활용한 4DX관에서 ‘공포체험 라디오’를, 메가박스는 100주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 4편을 특수음향관 MX관 등에서 선보였었다.

발맞춰 흥미진진한 스포츠 경기도 스크린으로 옮겨 오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지난달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경기를 전국 10여개 상영관에서 생중계했다. 스포츠 관중 입장 제한이 1년간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많은 관객에게 경기를 선보이기 위해 마련됐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야구장에 가지 못하는 팬들의 요구를 반영했다. 큰 스크린으로 여러 사람과 안전하게 경기를 보는 재미를 구현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극장이 영화에 더해 여러 콘텐츠를 발굴·유통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CGV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온라인 북토크 ‘문학살롱’(7월)이나 메가박스의 미술관 프로그램 ‘시네도슨트-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6월) 등 부지기수로 많은 문화 행사가 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위기의 영화관이 펜데믹으로 질적 변화를 하고 있다”면서 “영화관도 플랫폼으로서 관객에게 어필하는 문화 콘텐츠 개발에 더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