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희(82세) 목사는 1939년 전남 압해도에서 태어났다. …아들 선호 사상에 딸은 안중에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이방인처럼 외로웠다.
“어느 날 죽으려고 물에 뛰어들었는데 물 위에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는 거예요. 어머니 얼굴 한 번 더 보고 죽어야지,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절 기다리며 맛있는 밥상을 차려 놓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교회 여 집사의 인도로 예배당에 가게 됐다. …그는 또렷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인생의 가치관을 바꿀 귀중한 말씀이었다.
“옥희야! 너는 하나님이 만들었다. 너는 하나님의 딸이다.”
그 음성을 들은 후 박 목사의 삶은 바뀌었다. 성경책도 없던 시절이라 하루하루 말씀이 그립고 목말랐다. …열 일곱 살 되던 해 박 목사는 폐결핵을 심하게 앓았다. 찾아간 병원마다 장례를 준비하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목포 성모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곳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미국인 의사가 6개월이면 낫게 해 줄 수 있다며 지극정성으로 치료해줬답니다. 그분은 예수 믿는 사람이었어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나를 안아주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예수님을 믿지 않던 어머니가 감동을 하였답니다.”
…박 목사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와 박사와 같은 의료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한 손에는 성경책을, 한 손에는 왕진 가방을 들고 아프리카를 향했던 숭고한 신앙을 닮고 싶었다. 그러려면 슈바이처의 나라인 독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 독서노트 : 박옥희는 간호사에서 목사가 된 파독 간호사의 대모다. 간호사로 독일에 온 그는 1972년 신학 공부를 마치고 독일 루터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독일 정부로부터 2000년 ‘십자공로훈장 사회 및 복지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2009년 바이에른주 사회공로 메달을 받기도 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