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호소한 경비원, 가해자는 끝까지 “안 때렸다”

입력 2020-12-08 00:05 수정 2020-12-08 00:05
아파트 경비원 폭행 혐의를 받는 입주민 심 모씨가 지난 5월 22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서울 도봉동 서울북부지방법원을 나서 경찰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경비원 최모씨가 머물던 경비실 앞 추모 공간. 뉴시스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로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입주민 심모(48)씨가 “경비원을 때린 적 없다”며 여전히 폭행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심씨가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고 반박하며 징역 9년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심씨에 대한 결심공판은 7일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허경호) 심리로 진행됐다. 검찰은 “입주민의 갑질로 피해자가 돌아가신 사건으로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심씨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와 단둘이 있는 장소에서 행한 범행을 부인하고 있으며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며 “피해자가 당한 골절도 피해자의 형에게 구타당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피해자를 무고로 고소까지 해 피해자가 생명을 포기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심씨 측 변호인은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인정하지만 보복폭행은 부인한다”며 “여러 주민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고 모자로 맞았다는 부분도 CCTV를 보면 모자를 그대로 피해자가 쓰고 나온다. 실제 폭행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맞섰다.

심씨 역시 최후진술을 통해 “저는 절대 주먹으로 고인의 코를 때리거나 모자로 짓누르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 적 없다”며 “아까 (피해자의) 형님이 증인진술을 하면서 제가 고인에게 ‘머슴’이라고 했다고 했는데 그런 표현을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심심한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날 공판에 출석한 증인들의 주장은 달랐다. 입주민 A씨는 지난 5월 3일 피해자인 최모씨와 심씨가 다투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씨의 호소를 듣고 도움이 되고자 최씨가 기록해둔 포스트잇을 컴퓨터로 정리하는 일을 도와줬다”며 “약자 입장에 있는 최씨를 도와 억울한 심정을 풀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도와드린 것”이라고 울먹였다.

또 다른 입주민 B씨는 그보다 앞선 지난 4월 27일 최씨와 심씨 간 벌어진 싸움을 말렸다고 증언했다. 그는 “5년 동안 그 아파트에 살았는데 최씨는 굉장히 좋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동료 경비원은 최씨가 자신에게 털어놓은 고충을 증언했다. 그는 “(심씨가) 화장실 문고리를 잠가놓고 폭행했다고 하더라”며 “너무 아파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말했다.

심씨는 지난 4월 21일 최씨가 아파트 주차장에 3중 주차돼 있던 자신의 승용차를 손으로 밀어 이동시켰다는 이유로 최씨를 때린 혐의 등을 받는다. 또 같은 달 27일 최씨가 자신의 범행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복할 목적으로 최씨를 경비실 화장실로 끌고 가 약 12분간 감금한 채 구타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최씨는 이로 인해 3주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비골 골절상 등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유족에 따르면 심씨는 최씨에게 문자를 보내 “친형에게 폭행당해 코뼈가 내려앉았다고요?” “머슴의 끝없는 거짓이 어디까지인지 용서할 수 없다” “무슨 망신인지 모르겠다” “코가 부러졌으니 내일부터는 근무도 못할 것” 등의 조롱성 발언을 했다.

이 같은 심씨의 폭언과 폭행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던 최씨는 지난 5월 10일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자신을 돕던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너무 억울하다’ 등의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씨가 숨지기 전 각 15분 분량의 ‘음성 유서’ 3건을 녹음해 남긴 사실도 뒤늦게 드러나며 대중의 공분을 샀다. 여기에서 그는 “사직서 안 냈다고 (심씨가) 산에 가서 백 대 맞자고, 길에서 보면 죽여버린다고 했다”며 “고문을 즐기는 얼굴이고 겁나는 얼굴”이라고 호소했다. 이외에 심씨가 했다는 폭언과 협박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심씨는 당시에도 경찰 조사에서 “최씨의 코뼈 골절은 자해에 의한 것”이라며 억울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