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만에 몰라보게 단단해졌다. 숨도 못 쉬게 촘촘한 수비가 상대 공격을 틀어막고, 역대 최고 반열에 들만한 공격 조합이 순식간에 역습으로 골을 박아넣어 승부를 결정짓는다. 얼마 전까지 팀 색깔을 못 잡고 갈팡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손흥민의 소속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이야기다.
토트넘은 지난 6일 맞수 아스널과의 리그 경기에서 2대0으로 완승, 선두 경쟁 중인 디펜딩챔피언 리버풀을 골득실차로 누르고 단독 선두 자리를 되찾았다. 잉글랜드 대표 공격수 해리 케인과 손흥민이 또다시 도움과 득점을 번갈아 주고받았고, 무실점 경기도 한 경기 더 늘렸다. 점유율을 내주고도 완벽한 승리를 챙긴, 깔끔한 ‘실리 축구’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쉽게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8분 3실점 ▶ 6경기 1실점…7주 만에 무슨 일이?
스포츠전문매체 디애슬레틱은 토트넘의 변화가 수비 지표에서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수비 면에서 항상 약점이 있던 토트넘이 이를 완벽하게 보완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강팀을 상대로 무실점 경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최근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 아스널을 상대로 모두 무난하게 골문을 틀어막았다.
이전과 비교하면 차이가 명확하다. 토트넘은 앞서 이들 3팀을 포함한 소위 ‘빅6(상위 6개)’ 구단을 상대로 같은 무실점 3경기를 만들어내기까지 2018년 2월부터 지난 10월에 걸쳐 24경기를 거쳐야 했다. 약팀을 상대로도 구멍투성이였다. 지난 10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 후반 정규시간 종료 8분 전까지 3대0으로 앞서다가 내리 3실점 하며 승리를 놓친 장면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토트넘은 0대1로 승리한 번리전을 시작으로 6경기에서 단 1실점만 내주고 있다. 에릭 다이어와 토비 알더베이럴트가 시즌 초반 자주 나오던 실수를 없애고 단단한 수비를 보여주며 주전으로 자리했고, 스완지에서 데려온 신예 조 로든이 고비마다 높이를 더해주며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있다. 세르주 오리에와 세르히오 레길론의 측면수비도 준수하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수비진 수준이 많이 올라간 건 아니지만 폼 자체는 상당히 좋아졌다”면서도 “여전히 중앙 수비 자체는 아주 훌륭한 편이라 말하긴 힘들다”고 봤다. 수비 안정을 단순히 수비진 개개인의 기량 상승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수비수만’ 아니라 ‘팀’이 해낸 수비
수비가 안정된 가장 큰 이유는 앞선에서부터 적극적인 팀 협력이 이뤄지기 시작해서다. 특히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의 활약이 플러스 요소로 꼽힌다.
장지현 해설위원은 “포백뿐 아니라 호이비에르와 무사 시소코 등 팀 허리가 수비적인 마인드로 잘 무장되어 있다”면서 “팀 전체적으로 수비 수준이 올라갔다고 봐야 한다”고 봤다. 한준희 위원은 “미드필드에서 호이비에르 덕에 역할 분담이 명확해졌다”면서 “미드필드에서 균형이 잡히면서 수비도 함께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영국의 유명 전술 칼럼니스트 마이클 콕스는 지난달 30일 디애슬레틱 칼럼에서 맨시티, 첼시전 모두 무실점을 이뤄낸 토트넘 미드필드진의 수비 가담을 짚었다. 그는 특히 맨시티전에서 호이비에르와 시소코가 수비 시 일반적인 미드필더 위치보다 훨씬 아래에 처져 있던 장면을 예로 들며 이들이 수비진 4명과 함께 ‘6백’에 가까운 형태를 취했다고 분석했다.
수비 가담은 중원에서 뿐만이 아니다.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아스널전에서 토트넘 중앙공격수 케인은 상대 페널티박스보다 토트넘 페널티박스 안에서 공을 만진 횟수가 많았다. 이번 경기에서 후반 투입한 날개 자원 스티븐 베르바인 역시 측면에서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받았다. 지난 시즌 손흥민이 풀백과 윙을 넘나드는 역할을 부여받았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장 위원은 “무리뉴 감독은 기본적으로 수비를 팀 전체가 한다는 감독 철학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그는 “첼시 시절에도 부임과 함께 일단 실점하지 않아야 팀이 이길 수 있다고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도 무실점에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온 편”이라면서 “아직 좀 섣부르긴 하지만 무리뉴 감독 특유의 체제가 자리 잡아 가는 듯하다”고 봤다.
‘화룡점정’ 손-케 조합, 강점이자 약점?
수비가 단단해도 골을 넣지 못하면 물론 이길 수 없다. 최근 골 폭풍을 몰아치는 손흥민과 케인은 토트넘의 강력함에 마침표를 찍는 공격 조합이다.
아스널전까지 이들이 합작한 올 시즌 골은 11골, 통산 골은 31골이다. 과거 첼시에서 디디에 드로그바와 프랭크 램파드가 기록한 36골을 금세 추월할 기세다. 시즌 초 수비가 흔들리던 와중에도 불을 뿜던 둘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섭게 기세를 올리며 승부를 결정짓고 있다.
한준희 위원은 “지난 시즌은 손흥민이 수비 가담을 많이 하며 측면에서 케인에게 크로스를 올리는 형태였지만 올 시즌 둘의 동선이 바뀌었다”고 봤다. 그는 “손흥민이 상대적으로 득점에 집중하는 동안 케인이 거의 미드필더처럼 뛰면서 창의적인 패스를 찔러주는, 만능 플레이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과거 EPL에서 유명했던 짝 중 아스널의 데니스 베르캄프와 티에리 앙리의 조합에 가까운 형태”라고 비유했다.
케인의 변화는 특히나 토트넘에게 중요하다. 지난 시즌 득점에 치중했던 케인은 올 시즌 후방으로 내려와 수비 가담부터 역습의 연결고리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하는 중이다. 한 위원은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미드필더까지 내려와 뛰었던 웨인 루니의 모습과도 겹친다”면서 “오히려 루니보다도 더 창조적이고 놀랄만한 패스를 하고 있다. 전성기 루니와 요즘의 케인 중에서 고르라면 케인을 선택할 것”이라고 칭찬했다.
다만 손흥민과 케인의 공격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은 긴 일정 중 약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장지현 위원은 “굳이 토트넘의 불안요소를 꼽는다면 손흥민과 케인 조합”이라면서 “다른 선수로도 득점 패턴이 분산되어야 하는데 두 선수가 부상이나 다른 변수로 결장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봤다. 최근 손흥민이 소집된 대표팀에서 코로나19 집단 확진 사태가 발생하자 토트넘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던 점 역시 대체자원이 없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