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대표들 ‘판사 사찰’ 대응 안 한다… 추·윤 갈등 계속

입력 2020-12-07 20:16 수정 2020-12-07 20:21
각급 법원에서 선발된 대표 판사들이 사법부 현안을 논의하는 법관대표회의가 열리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연합뉴스

전국 법관 대표들 회의체인 법관대표회의가 7일 이른바 ‘판사 사찰’ 의혹을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했으나 공식 대응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측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안건으로 상정된 ‘법관의 독립 및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의안’은 최종 논의 결과 부결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관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준수해야 하고 오늘의 토론과 결론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 의식이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화상회의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는 전체 법관대표 125명 가운데 120명이 참석했다. 사찰 의혹 문건은 애초 회의 안건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날 1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상정됐다.

개인 법관이 아닌 판사 협의체의 집단적 우려가 처음으로 공식화할 가능성에 이목이 쏠렸으나 결과는 공식 대응 없는 신중론으로 일단락됐다.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처분 취소 소송이 진행 중이며 앞으로 소송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다수 법관은 정치적 중립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부 법관들은 공판 검사가 아닌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정보를 수집한 것은 문제라며 공식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등 수사 과정에서 수집된 비공개 자료가 활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는 점도 지적하며 “법관의 신분상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의혹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지난 2월 작성한 ‘주요 특수·공안 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에 사건 담당 판사 37명의 출신 고교·대학, 주요 판결, 세평 등이 기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불거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윤 총장의 징계청구 사유 중 하나로 이 문제를 적시하기도 했다.

이날 의혹이 정식 안건으로 상정됐음에도 끝내 의결되지 못하면서 판사들의 대응에 촉각을 세웠던 윤 총장 측은 일단 한숨 돌리게 됐다. 반대로 의혹을 제기한 추 장관 측은 ‘사찰 대상’으로 명시한 판사들로부터 공감을 받지 못하면서 여론전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의혹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관대표회의에서 일부 제기됐다는 점에서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는 평가도 있다. 향후 수사나 소송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거나 추가 의혹이 불거지면 사법부 내 여론은 더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