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북부 신주현에 있는 해발 2600m 고지의 러산(樂山) 기지에는 미국 레이시온사의 조기경보 레이더 시스템 ‘페이브 포스’가 설치돼 있다. 대만이 2013년 14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들여 도입한 장거리 레이더다. 중국과 남중국해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는 이 레이더는 5000㎞ 떨어진 곳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탐지하고 이동 중인 발사체를 정밀 추적할 수 있어 규모와 성능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중 갈등이 격화돼 군사 충돌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이 레이더의 전략적 가치가 한층 커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7일 군사 전문가들을 인용해 “대만 북쪽 산 정상에 설치된 강력한 레이더가 일본과 괌의 미군기지를 겨냥한 중국 인민해방군(PLA)의 공격 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만에서는 중국군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이 레이더 시스템이 타격 1순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여겨 필요하다면 무력으로 통일할 수 있다고 법에 명시해놨다. 중국과 대만의 군사 전문가들은 지난 5일 열린 글로벌타임스 연례 포럼에서 군사적 압박 없이 중국 본토와 대만의 통일이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국과 밀착하고 있는 대만 정부를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만은 레이더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데 매년 2460만달러(약 267억원)를 미국에 지급하고 있다. 레이시온사의 레이더 핵심 기술이 대만에 제공되지 않아 미국 기술자들이 정비 작업을 맡고 있고, 대만은 레이더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미국과 공유하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 10월 이 시설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기술고문이 동행했다고 SCMP는 전했다.
수쯔윈 대만 단장대 교수는 “대만은 미국과 실시간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지난 10년동안 남중국해에 잠수함 함대를 구축한 중국군의 기습적인 수중 미사일 공격을 추적‧대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군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증가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 활동에 대응해 잠수함 함대 규모를 확대해왔다. 중국 해군의 최신형 잠수함에는 최대 사거리가 1만4000㎞에 달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JL-3 탄도미사일이 탑재돼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러산 레이더 기지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대만은 레이더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산 패트리엇3 대공 미사일, 텐궁3 장거리 대공 미사일, 톈궁2 중거리 대공 미사일, 단거리 대공포, GPS 간섭 시스템의 다중 방어막을 쳐놓은 상태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