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려는 조치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청사진을 내놨다. 다만 정부가 탄소중립 추진에 따른 산업계와 국민의 경제적 부담 요인은 밝히지 않고 거창만 목표 제시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7일 ‘2050 탄소중립 실현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지난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나온 첫 대책이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0(넷제로)’이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환경 보호가 궁극의 목표지만 세계에서 한국이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정부는 탄소중립을 추진하지 않으면 주력산업의 투자 기회에 제한이 생기고 수출·해외·자금조달·기업신용등급 등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산업경쟁력 약화·일자리 감소 등 부담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서도 “그런데도 우리 경제의 생존을 위해 2050 탄소중립은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추진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 나서지 못하고 특히 세계 경제에서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경제구조 저탄소화’ ‘저탄소 산업생태계 조성’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 등 3대 정책 방향과 ‘탄소중립 제도기반 강화’ 내용을 추가한 3+1 전략을 제시했다. 우선 석탄발전 등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본격 전환하기로 했다. 2034년까지 석탄발전 60기의 절반인 30기를 폐지할 방침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전체 에너지믹스에서 석탄발전 비중은 40.4%로 가장 많았다. 철강·석유화학 등 배출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의 저탄소 전환도 추진한다. 스마트공장·스마트 그린 산단, 디지털 전환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또 전국 2000만 세대에 전기차 충전기를 보급하고 도심·거점별 수소충전소 2000여 곳을 구축하기로 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예산·세제 지원 체계도 손본다. 내년도 에너지 전환지원과 탄소 저감기술 개발 등 사업에 약 3000억원을 증액했고 정책금융기관의 녹색 분야 자금지원 비중은 현재 6.5%에서 10년 후 13% 수준까지 2배 확대하기로 했다. 기후대응기금을 신규로 조성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면서 피해를 보는 지역과 노동자 등을 기후대응기금으로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또 대통령 직속으로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설치해 국가전략과 주요정책·계획을 심의하고 이행상황 등을 점검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는 에너지차관제 신설을 추진하는 등 정부부처 탄소중립 실행역량도 한층 강화한다. 홍정기 환경부 차관은 “탄소중립 추진전략에서 에너지 전환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산업부에 힘을 실어주려고 에너지차관제를 신설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정부는 “탄소중립까지 기간이 촉박하다”면서도 “탄소중립 시나리오 분석을 전제로 추진 가능한 전략 수립은 내년 하반기 이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추진전략은 내년 상반기부터 이행할 수 있는 수준의 전략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 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면서 신규로 건설하는 석탄발전소 7기 해결 방안은 내놓지 않았고 석탄에 이어 발전 비중이 2번째로 높은 원전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함구했다. 새로 설립하는 탄소중립위원회와 기존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의 역할 구분과 존립 목적도 애매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탄소중립 추진전략에는 국민 부담해야 할 민감한 내용이 모두 빠졌다. 정부는 지난 2017년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때도 값싼 원전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비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면 전기요금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공론화하지 못해 수년째 전기요금 현실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을 비롯해 탄소세 도입·경유세 인상 등이 불가피하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확답을 피했다. 홍 부총리는 “현 단계에서 탄소세 도입 여부와 경유세 인상 여부에 대해 말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공약으로 내걸고, 지난 9월 중국에 이어 10월 일본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하자 정부가 다급하게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 경제전문가는 “탄소중립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지만 국민의 경제적 부담 요인, 산업 구조 전환에 따른 기업의 피해 등과 관련된 대책이 촘촘하게 마련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