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하기 힘든 바이러스가 ‘돈먹는 하마’가 되는 시대다. 지난 2월 국내에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는 11개월째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방역·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정부의 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정부가 올해 코로나19와 관련해 공식 발표한 재정 규모만 284조원대에 달한다.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AI)와 같은 가축 질병 바이러스도 수시로 나라 곳간을 갉아먹는다. 지난해부터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까지 더해졌다. 강력한 방역 대책 덕에 살처분 보상금이 적은 게 그나다 다행이다.
문제는 이 상황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반복될 수 있는 위기는 화수분처럼 솟아나지 않는 정부 재정을 위협한다. 전문가들은 위기 극복의 주춧돌이 되는 정부 재정을 전략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 올해 쓴 돈만 284조8000억원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투입한 재정 규모는 284조8000억원에 달한다. 규모로는 올해 예산(512조원)의 과반에 달하는 재정이 투입됐다. 올 초 예비비와 1차 추가경정예산 등 실물 피해 대책으로 32조원을 쏟아부은 게 시작이다. 이후 산업계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175조원의 금융안정대책과 1~2차 긴급재난지원금이 투입됐다.내년에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예산 투입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미 3차 긴급재난지원금을 포함해 4조원 이상의 코로나19 예산이 내년 예산에 포함됐다.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윤영진 계명대 행정학과 교수는 6일 “지금은 전시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빚을 내서라도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가축 질병 바이러스까지 재정 압박
이런 가운데 바이러스가 원인인 가축 질병이 함께 덮쳤다. 지난 5일 전남 영암군 소재 육용오리 농장에서 올 겨울 들어 3번째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진 사례가 나왔다. 지난달 28일 첫 사례가 나온 이후 3~4일 간격으로 확진 농장이 늘어가고 있다. 지난 10월 ASF 추가 확진 농장이 나온 점과 함께 방역 당국을 옥죄고 있다.그나마 재정적으로는 2조9502억원의 살처분 보상금이 투입됐던 2010년보다는 나은 편이다. 올해 기준 3408억원의 방역 예산을 편성한 덕분에 일군 성과이기는 하다.
향후 위기 대비 위해 ‘재정 정비’해야
문제는 이같은 상황을 정부에서 통제하기가 버거워진다는 점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해도 또 다른 바이러스가 덮칠 수 있다. 가축 질병 역시 마찬가지다. 생태계의 구성원인 야생멧돼지나 철새를 바이러스 전파 우려로 끊어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했던 바이러스가 언제든지 재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향후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재정을 잘 정비해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윤 교수는 “앞으로는 또 다른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 재정을 채우는 증세 논의도 필요하다”며 “한시적으로 다른 복지 지출을 줄이는 등 재정 지출의 우선 순위도 전략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