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펜 독서] 신복룡 역주 ‘한말 외국인 기록’(15): 콜레라로 서울 인구 절반이 죽었다

입력 2020-12-06 12:23

학자였던 권철신이 무리를 모아 기독교의 교리를 연구하고자 입산한 것은 1780년 경이였다. 그들은 오직 단 한 권의 기독교 교리서의 필사본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모두가 개종했다. 이 무렵 다른 한 청년이 북경에서 프란체스코회의 구베아를 만나서 영세를 받았다. 그는 귀국할 때 많은 교리서와 십자가와 성화와 그 밖의 여러 가지 종교적인 표상을 가지고 왔다.

오늘날 양근은 한국에서 로마 가톨릭의 발상지로 불린다. 1785년에 이 새로운 종교에 대한 적극적인 탄압이 시작되고 왕에게 이들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다음 해에는 북경에 갔던 한 사신이 귀로에 많은 가톨릭 교리서를 가지고 왔는데 왕이 이를 알고 커다란 소동이 일어났다. 그 후로부터 조선에 입국하는 모든 사신의 휴대품을 엄격히 검색하도록 결정했다.

그 해에 또한 콜레라가 전국에 퍼져서 커다란 재난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때 37만 명이 죽었다고 했다. …서울 인구의 절반인 6만 명이 죽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가 막을 올리자 조정에서는 천주교를 뿌리째 뽑아 버리려는 정책을 철저하게 실시했다. …1810년부터 20년 동안은 참극으로 가득 찼다. 홍수, 페스트, 한해가 연달아 일어났는데 오늘날 조선이 이토록 가난에 시달리는 것이 어떤 면에서 보면 그때 입은 피해로부터 쉽사리 회복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집문당 刊 ‘대한제국멸망사’ 제 7장 병자호란과 초기의 기독교:135~137쪽)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