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3일 전국 고사장 앞에는 예년과 다른 차분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후배 학생들의 열띤 응원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사장 교문에서 수험생을 맞이한 이들은 방역 관리를 위해 배치된 학교·방역 당국 관계자들이었다.
수험생들은 이날 상당수 지역에서 영하권으로 떨어진 수능 한파에 저마다 두꺼운 패딩과 장갑, 마스크로 무장한 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들린 도시락 가방에는 따뜻한 보온병도 함께 들어 있었다. 이들은 부모님과 휴대전화로 인증 사진을 찍거나 간단한 포옹만 하고는 교문을 통과했다. 고사장 현관에 붙어 있는 시험실 배치표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수험생들이 몰려 학교 관계자가 거리두기를 지도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날 오전 7시쯤 강남구 개포고 앞에서 만난 학부모 최현숙(58·여)씨는 “고사장까지 오는 길 내내 아이가 수능보다 코로나19 감염을 더 불안해 했다”면서 “그나마 단짝 친구와 같은 고사장에 배치돼 용기를 얻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주로 자녀가 겪었던 ‘코로나 스트레스’를 전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초구에 사는 학부모 김모(45·여)씨는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자녀의 뒷모습을 보며 “딸이 최근 생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코로나19 걱정에 시달렸다”며 “함께 동요하면 아이에게 부담이 될까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애틋한 심정을 전했다.
비슷한 시각 영등포구 여의도고 앞에서 만난 학부모 김모(48·여)씨는 “아이가 낯선 방역 환경에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김씨의 휴대전화에는 아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기 위해 빼곡히 적어놓은 ‘오후에 장 볼 거리’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수험생들은 비교적 담담했다. 오히려 부모님의 등을 토닥거리며 안심시키는 수험생도 있었다. ‘한국사 요약집’이라는 노트를 들고 정문으로 향하던 한모(18)양은 “어떤 마스크가 편한지 어제 친구들이랑 비교해보기도 했다”며 “모두가 힘든 만큼 되도록 불평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시험을 보려 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수험생 선배를 격려하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 있던 김모(17)군은 “작년에는 여의도여고 앞에서 대규모로 응원전을 펼쳤는데 올해는 응원전을 못해 아쉽다”고 털어놨다. 뜻밖의 응원을 받은 수험생들은 멋쩍어 하면서도 손을 흔들며 고마움을 표했다.
2교시까지 마친 점심 시간에는 고사장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는 이색적인 모습이 운동장 담벼락 너머로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햇볕을 쬐며 운동장을 거니는 수험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코로나 수능’인 만큼 수험생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은 여전히 무거워 보였다. 이날 수능을 마치고 나온 이모(18)양은 “후련하기보다는 이틀 뒤부터 줄줄이 있을 논술 시험이 걱정된다”며 “확진자가 계속 나오는 만큼 건강 관리가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이날 오전 중구의 동성고에서는 성동고에 가야 하는데 학교 이름을 잘못 인식한 수험생이 경찰차로 급히 이송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은 이날 수능과 관련해 접수된 신고는 총 620건으로 지난해(1061건)보다 41.6% 적은 수치라고 밝혔다.
최지웅 정우진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