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집행정지 결정문, 조희대 전 대법관 소수의견 참고

입력 2020-12-02 15:48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검사의 수사와 공소제기·유지 권한의 공정한 행사를 위해 검찰청이 소속된 법무부 장관으로부터도 최대한 간섭받지 않고 행사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지난 1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 효력을 정지시킨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조미연)의 결정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법조계에선 이 결정문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각기 가진 권한의 긴장 관계를 유의미하게 잘 풀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법리적으로 보면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는 윤 총장의 지난 10월 국정감사 발언이 지닌 속뜻을 법률용어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취지다. 행정부 소속이면서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보장이 요구되는 검찰의 ‘준사법기관’적 특성을 사법부가 되짚었다는 의미 부여도 있었다.

조 부장판사는 이 결정문을 작성하면서 지난 1월 30일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판결을 참고했다. 그가 검찰과 법무부 장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결정문에 인용한 대목은 지난 3월 퇴임한 조희대 전 대법관의 소수의견이었다.

조 전 대법관은 무죄 취지의 별개 의견을 내면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직권남용 혐의 근거가 된 ‘청와대 캐비닛 문건’은 위법수집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사권이 없는 청와대비서실이 직전 정부의 문건을 수집해 검사나 특검에 제출한 행위는 검찰·특검의 직무상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과 법무부 장관 사이의 긴장 관계에 대한 언급은 이를 논증하는 과정에서 전제로 제시됐다.

재판부가 소수의견 내용을 논거로 삼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검찰과 법무부 장관의 관계를 정리한 판례를 그만큼 찾기 어려웠다는 방증이다. 조 부장판사로서는 하나의 선례를 만든 셈이다. 결정문에는 사건번호와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라는 내용이 적혔지만 조 전 대법관의 별개 의견을 참고했다는 언급은 없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전합 소수의견을 참고했다는 표시 없이 쓸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면서도 “그 자체로 타당한 내용이고 결론에 영향을 미칠 건 아니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