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두세 달 내로 ‘재앙’에 가까운 금융 위기가 올 수 있다며 보유 현금을 대폭 늘렸던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다시 투자에 들어갔다.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스웨덴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업체의 지분을 사들였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그룹 지분을 매각한 이후 EU로 투자처를 옮긴 셈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무게추’ 역할로서 유럽연합(EU)의 중요도가 높아질 것을 예측했다는 분석이다.
1일(현지시간) CNN방송 등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스웨덴 정보기술(IT)업체 ‘신치’의 지분 10%를 인수했다. 인수된 주식은 총 520만주로 시장 가치는 미국 달러화 기준 7억8000만 달러(약 8616억원) 규모에 달한다.
신치는 스톡홀름에 본사를 둔 클라우드·이동통신 부문 다국적 기업이다.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 기술을 활용해 가상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지자 비대면 소통 수요가 크게 늘면서 기업가치도 급격하게 커졌다. 올해 회사 주가만 3배가량 오르면서 유럽 증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CNN은 소프트뱅크가 올해 회계연도에 이미 950억 달러(약 104조9465억원)의 자산을 매각해 대규모 현금을 확보한 이후 다시 투자 태세로 돌아섰다고 평가했다.
앞서 손 회장은 “코로나19 제2차 유행으로 전 세계가 셧다운(봉쇄)되면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올해 공격적으로 자산을 매각했다”며 현금 확보에 들어갔다고 밝혔었다. 소프트뱅크 그룹은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암 홀딩스)과 미국 이동통신업체 T모바일,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그룹 지분 등을 잇달아 매각했다. 이에 따라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현금만 8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은 또 자산 매각 이후 확보한 현금으로 저평가된 자산을 매수하거나 자사주를 더 사들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업에 투자할 기회가 생긴다면 ‘공격적’으로 나서겠다고도 밝혔다. 이 때문에 알리바바의 지분 매각 이후 스웨덴의 IT 업체에 투자를 단행하면서 손 회장이 새로운 투자처로 EU를 지목했다는 분석이 업계를 중심으로 나온다.
EU는 미·중 무역갈등 상황에서 판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EU는 내년 1월 20일 미국의 바이든 차기 행정부 출범에 맞춰 향후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중국을 배제하자는 식의 제안을 준비하는 등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빈 웨이안드 EU 집행위원회 무역 총국장은 지난 30일 유럽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비공개회의에서 “새로운 글로벌 기술 표준을 만들기 위해 미국과 손잡고 ‘대서양횡단무역·기술위원회(TTC)’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