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사모펀드 KCGI가 제기한 한진칼의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을 기각하고 한진그룹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내 유일 초대형 항공사’를 향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안이 첫 고비를 넘겼다. 다만 국내외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재벌 특혜 논란, 대량 실업 우려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쌓여있다.
서울중앙지법은 1일 KCGI가 ‘산업은행의 한진칼 유상증자 참여를 막아달라’며 신청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을 기각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 중인 KCGI는 지난 19일 가처분을 신청하며 “(제3자 배정 유증은) 조 회장의 경영권 지배권 방어가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제3자 배정 유증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산은과 한진칼의 불가피한 ‘자본 협력’이라고 봤다. 법원은 “인수가 차질없이 이뤄지면 한진칼 입장에선 두 항공사를 통합한 지주회사가 되고 산은을 주요 주주로 확보해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며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재무 부실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한진칼 경영에 참여해 항공사 간 통합 과정을 효율적으로 감독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산은과 한진칼 모두에 이득을 준다는 점에서 ‘사업상 중요한 자본제휴’가 신주 발행의 목적이라는 판단이다.
법원은 KCGI가 대안으로 제시한 무의결권 우선주 발행안, 사채 인수안 등에 대해 “산은이 항공사 통합을 지원하는 목적과 동기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항공산업 구조 개편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산은은 의결권을 가진 주주로서 한진칼 경영에 참여, 감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초대형 항공사 출범을 향한 산은, 대한항공의 작업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산은은 계획대로 2일 한진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대금 5000억원을 납입할 예정이다. 대한항공은 조직을 별도 구성한 후 조만간 아시아나항공 실사를 진행한다. 이후 M&A 작업은 한진칼이 산은 지원금을 토대로 대한항공의 2조5000억원 규모 유증에 참여하면 내년 6월 말까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유증에 1조8000억원을 투입해 최대 주주로 오르는 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딜 성사까지 넘어야 할 고비는 여전히 많다. 가장 큰 과제는 국내외 당국의 결합 심사다. 양사가 통합되면 국내선 기준 시장 점유율이 60%를 넘어 독과점 문제가 우려되는 만큼 공정거래위원회와 최소 4개국의 기업 결합 심사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재벌 특혜 논란, 대량실업 우려 등으로 차가워진 여론도 장애물이다. 다수 시민단체들은 조 회장이 산은 지원금만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것을 두고 “각각 아시아나항공 문제, 경영권 분쟁을 해결하려는 산은과 조 회장의 밀실 야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량 구조조정을 우려하는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노사정 회의체를 만들어 M&A 과정에 참여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KCGI도 가처분 기각 항고, 본안 소송 등을 검토하는 등 경영권 분쟁도 불씨가 남아있다. KCGI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가처분 기각 결정에 유감”이라며 “항공업 재편의 공론화, 한진그룹의 전문경영인 체제 및 독립적 이사회 구성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진그룹은 “대한민국 항공산업 구조 재편의 당사자로서 위기 극복과 경쟁력 강화, 일자리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