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챔피언 전북 현대의 일본인 미드필더 쿠니모토 다카히로(23)의 올 시즌은 드라마틱했다. 시즌 개막전 교체로 들어와 경기 흐름을 바꿔놓으며 승리를 이끌더니, 점차 주전으로 도약하며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올해 국내 마지막 경기인 FA컵 결승전에서 부상으로 쓰러졌다. 프로선수로 뛰며 우승컵을 든 첫해였지만, 정작 자신의 실력을 올 시즌 고국 일본에 다시 보여줄 기회는 사라졌다.
쿠니모토는 K리그 우승컵을 든 두 번째 일본인 선수다. 이전까지는 2015년 FC 서울에서 뛴 다카하기(현 FC 도쿄)가 유일했다. 아시아선수를 타 국적 선수와는 별도로 더 영입할 수 있는 ‘아시아쿼터제’가 있지만 본래 종목을 막론하고 한국에서 뛰는 일본인 선수가 희귀하기도 하고, 일본 선수들이 J리그에 비해 몸싸움이 유독 격렬한 K리그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일본 뿐 아니라 아시아 선수를 통틀어도 K리그 우승컵을 들어본 선수는 손에 꼽는다.
1일 현재 그는 동료들이 카타르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무대로 향한 동안 한국에서 발목 피로골절 수술을 마친 상태다. 회복에 3개월 가량이 걸리는 큰 부상이다. 애초 일본에서 수술을 받으려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귀국 즉시 격리를 해야 하는 터라 한국에서 수술하기로 했다. 입원 중인 선수의 사정으로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쿠니모토는 직접 자필로 질문에 답했다. 쿠니모토가 가장 절친한 동료로 꼽은 김민혁이 카타르에서 도움을 보탰다.
가파른 실패와 성공의 골짜기
K리그 팬들에게 쿠니모토의 롤러코스터 축구인생은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다. 어린 시절 그는 일본 축구계를 이끌만한 재능으로 불렸다. J리그 최고의 인기팀 우라와 레즈가 애지중지하는 유망주로 일본 전역의 주목을 잔뜩 받으며 성장했다. 구단의 최연소 출장과 득점 기록도 그가 갈아치웠다. 그러나 불량한 태도로 문제를 일으킨 끝에 우라와에서는 결국 방출당했고, 이후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고향팀 아비스파 후쿠오카에 입단해서도 두 시즌만에 쫓겨났다.
그대로 끝날 뻔한 쿠니모토의 선수 인생을 되살린 건 K리그1으로 막 승격한 경남 FC의 김종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의 지도 아래 쿠니모토는 팀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리그 준우승이라는 구단 역대 최고 성적을 안겼다. 일본 최고의 재능 중 하나로 평가받던 그가 드디어 잠재력을 폭발시킨 셈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경남은 거짓말처럼 미끄러지며 K리그2로 강등당했고, 쿠니모토는 중원전력을 강화하려 고민 중이던 리그 챔피언 전북 현대로 자리를 옮겼다.
쿠니모토는 과거 방황하던 시절과 비교해 자신의 가장 큰 변화로 ‘축구’에만 집중하게 된 점을 꼽았다. 그는 “노력도, 지금의 내 자신도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지금은) 항상 축구에 관련된 걸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얼마나 받는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얼마나 플레이를 잘 할지, 팀에 보탬이 될지, 팬들을 기쁘게 할지, 골을 넣거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한다”고 덧붙였다.
쿠니모토는 과거에 대해 “그때는 세상을 가볍게 생각했다. 가장 부족했던 점”이라면서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더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의 자신에게 조언을 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는 “앞만 보고서 네가 좋아하는 축구에 전력을 다하라. 멀리 돌아가도 좋으니 꿈을 향해 힘내라”고 해주겠다 답했다.
닭갈비를 좋아하는 부끄럼쟁이
부끄러움이 많은 편인 쿠니모토의 팀 적응에 가장 많이 도움을 준 건 김민혁이다. J리그에서 오래 선수 생활을 해 일본어가 유창하기도 하고, 살가운 성격 덕에 동료를 돕는 데 거리낌이 없다. 시즌 도중 사우디아라비아 구단 알나스르로 이적한 김진수 역시 쿠니모토와 가까웠다. 그는 “구단에 통역이 없긴 하지만 민혁 상(さん)이 통역해줘 문제가 없었다. 너무도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라이스 감독으로부터의 지시는 주로 영어로 받았다.
그는 이번 시즌 골 세리머니 때도 김민혁과 김진수 정도에게만 씨익 웃어보일 뿐 큰 감정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인 성향이 부끄러움이 많고 큰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고 쑥스러워했다. 김진수에게는 “(타 팀 이적 때문에 헤어져) 굉장히 아쉬웠다. 저를 잘 돌봐줬는데 아무것도 보답한 것이 없다”면서 “언젠가 또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올거라 믿고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쿠니모토는 평소 휴식기간에 김민혁과 함께 서울이나 대전에 가서 쇼핑을 다니거나 외식을 할 때가 많다. 김민혁은 “쿠니(쿠니모토의 팀 내 애칭)가 닭갈비를 좋아해서 많이 먹으러 다녔다. 저도 외국생활을 많이 해봐서 도와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생일 때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니 사시미(회)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는데 전주에서는 유명한 횟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참치횟집에 가서 초라하게라도 생일파티를 해줬다”고 덧붙였다. 우리말을 가르쳐주면서 팀 내 고참인 신형민에게 ‘형민이 형,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하라고 시키기도 한다.
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들이 있다. 축구를 그만뒀을 당시 곁에 있어줬던 이들이다. 이 친구들은 쿠니모토가 경남에서 뛴 지난해 4월 가시마 앤틀러스 원정경기에 찾아와 만화 ‘슬램덩크’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라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비행기로도 1시간 넘는 거리를 건너와 경남 응원석에서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선 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쿠니모토조차 경기 뒤 눈물을 흘렸다. 이 친구들은 쿠니모토가 우승컵을 들어올린 리그 마지막 경기도 TV로 챙겨보고서 문자로 축하해왔다. 쿠니모토는 “메시지를 보고서 굉장히 기뻤다”면서 “최고의 친구들이다. 항상 힘이 돼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재능에 노력이 더해졌을 때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전북에서도 그는 연습벌레다. 휴일에도 훈련장에 나와 개인훈련을 하는 건 물론 일과가 끝난 뒤에도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 선수로서 그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싶어한다. 전북에 온 이유 역시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목표의식 때문이었다. 김민혁은 “쿠니는 전북이라는 수준 높은 구단에서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고 말했다”면서 “목표의식이 뚜렷한 선수”라고 말했다.
쿠니모토는 나카타 히데토시, 나카무라 슌스케와 카가와 신지 등 일본 역대 플레이메이커들처럼 유럽 무대로 진출하는 게 최종 목표다.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는 게 꿈”이라면서 “꿈을 향해 매일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차례나 방출을 당하는 등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긴 일본 J리그 복귀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다”면서도 “지금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K리그에 대해서는 “신체적인 면, 정신적인 면이 굉장하다”면서 “다만 일본 (J리그)에 비해 패스와 테크닉에서는 약간 못 미친다”고 말했다.
중원 플레이메이커인 그가 올 시즌 기록한 공격포인트는 2골 1도움이다. 시즌 초에 스스로 정했던 목표치 10골 10도움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그의 기여도는 수치로만 따질 수 없다. 전북이 올해 리그에서 치른 27경기 중 25경기에 출전하며 입단 첫 시즌부터 확고한 주전을 차지했다. 다소 답답했던 전북의 중원에 ‘축구 도사’ 쿠니모토가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공격 선택지가 다양해졌고, 이는 전체적인 전력 상승 효과로 이어졌다.
모라이스 전북 감독은 지난달 고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리그 최우수선수(MVP) 손준호와 함께 쿠니모토를 직접 거론하며 “유럽에서 뛸 수 있는 선수”라고 극찬했다. 동료 김민혁은 쿠니모토가 “한국 선수들에게는 없는, 번뜩이는 기술을 팀에 보태준 선수”라고 평가했다. 쿠니모토는 “(10골 10도움이라는) 개인 목표를 달성 못해 아쉽긴 하다”면서도 “많은 시합에 출전했기 때문에 약간은 팀을 위해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쿠니모토는 전북에서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1년간 신세 많이 졌습니다. 마지막에 부상을 입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라면서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응원 부탁드립니다”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