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기업·투자 대세?…‘ESG 열풍’ 속 옥석가려야

입력 2020-12-01 10:00 수정 2020-12-01 14:17

롯데손해보험은 지난달 소방관을 대상으로 한 ‘렛 히어로(let:hero) 소방관 보험’을 내놨다. 업계 최초다. 이 상품은 상해·질병으로 인한 사망·후유장해·입원·수술, 암·뇌졸중 진단 등을 비롯해 소방업무 중 발생할 수 있는 사망과 중증화상 등 각종 사고도 보장한다. 그동안 소방관들은 직업적 특수성 때문에 민영보험의 사각지대를 맴돌았다. 롯데손보 관계자는 1일 “일반 보험상품과 가입 금액이 같기 때문에 가입 금액을 제한하는 기존 보험상품들과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소방관 보험 출시는 롯데손보의 ‘ESG 경영’ 강화 방침과 맞닿는다. ‘ESG 경영’은 재무적 성과 외에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해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경영 활동을 일컫는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ESG는 기업의 사회공헌 사업 정도로 인식됐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생태·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강조되면서 ESG가 투자와 경영의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 ESG 등급이 높은 기업들은 손실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고 수익률은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투자정보제공업체인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의 보고서에 따르면 ESG를 중시하는 기업일수록 각종 위험 발생 빈도가 덜하고, 위험이 발생해도 대처가 뛰어나 투자 손실을 최소화한다. 결론적으로 투자자들의 수익률 제고에 유리하다는 얘기다. MSCI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ESG 등급을 평가받는 기업은 약 9000여곳으로 10년 전(2000곳)에 비해 4.5배 수준으로 늘었다. 이른바 ‘착한 투자’ 시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투자금이 모이는 금융권은 ESG 이슈의 한복판에 서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일 “EGS 경영은 각 사마다 경영의 새로운 규칙으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라며 “ESG 투자를 통한 수익 달성 뿐만 아니라 ‘착한 금융’ 이미지 제고, 사회공헌 등 다목적 포석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뉴딜·혁신 금융정책 기조와도 궤를 같이 한다.

이미 주요 금융사들은 저마다 ‘ESG 경영’을 선포하고 세부 로드맵까지 제시하고 있다. 최근 은행·카드사들이 잇따라 발행하고 있는 ESG채권은 일종의 ‘신호탄’이다. 하나카드가 최근 2000억원 규모로 발행한 ESG 채권은 발행 용도에 ‘중소 가맹점 금융 지원’을 명시했다. 앞서 롯데카드가 1500억원 규모로 발행한 소셜본드 역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 가맹점의 카드결제 대금을 조기 지급하기 위한’ 용도로 내놨다.

앞서 상반기에는 신한카드와 국민카드가 각각 1000억원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초부터 지난 10월까지 발행된 ESG 채권 규모는 총 48조6530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동안 발행된 규모(15조830억원)보다 3배나 많다. 지난해 전체 발행 규모(25조6800억원)로 따지면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투자자 입장에 선 고객들로서는 유념할 부분도 있다. 한국의 ESG 투자 환경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까지 초기 단계라 관련 정보나 법·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무늬만 ESG’를 내세우는, 이른바 ‘그린 워싱(Green Washing·환경위장주의)’를 내세우는 기업이나 상품은 아닌지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혜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 설명서에 공개되는 정보만으로 투자자들이 스스로 펀드의 ESG 수준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면서 “실제 ESG 투자원칙에 따라 운용되지 않는 상품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ESG 투자 공시 의무가 없고, 투자 관련 설명서도 일반 펀드 설명서와 다르지 않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국제자연보전기관인 세계자연기금(WWF)은 이날 한국의 주요 시중은행 5곳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48개 은행을 대상으로 ESG 성과를 측정한 결과, 아시아 은행들의 ‘평균’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행의 경우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 한국의 은행의 ESG 성과 기준 충족도(평균)를 분석한 결과, 목적 부문 65%, 정책 부문 13%, 절차 부문 11%, 임직원 부문 18%, 금융상품 부문 40%, 포트폴리오 부문 28% 수준이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