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의 드라마 진출이 활기를 띠고 있다.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도약과 드라마 제작환경의 양·질적 발전이 맞물린 결과다.
지금까지 영화는 감독 중심 예술로 여겨져 왔다. 반면 김은숙 김은희 등 으레 작가들의 이름이 따라붙는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었다. 영화는 또 방송상 심의 규제를 받는 드라마와는 달리 표현상의 자유도가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도 규모가 커지고 다양한 소재가 시도되면서 두 분야 사이의 경계도 점차 희미해지는 중이다.
물론 영화감독이 드라마 시장에 진출한 사례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 ‘홀리데이’ 등을 히트시킨 양윤호 감독은 2009년 당시 KBS 2TV ‘아이리스’ 연출을 맡아 영화 같은 시퀀스를 선보였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한지승 감독은 2006년 SBS ‘연애시대’를 특유의 멜로 감성으로 풀어냈다.
하지만 최근은 이보다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부산행’으로 1000만명을 동원한 연상호 감독은 드라마 ‘지옥’을 넷플릭스에서 선보일 예정이고 ‘밀정’ 김지운 감독은 애플TV플러스에서 드라마 ‘미스터 로빈’을 선보인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도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이란 미스터리물에 도전한다.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드라마 진출은 OTT가 끌차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년 국내에 상륙한 넷플릭스는 한국 유수의 제작진과 손잡고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여왔다. 독점 콘텐츠가 많을수록 구독자 확보에 유리해서다. 특히 시즌제로 선보여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드라마는 OTT가 특히 선호하는 장르라고 알려져 있다.
더구나 넷플릭스는 심의 등 규제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넷플릭스와 협업한 한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확정하기까지는 매우 까다롭지만 일단 정해지고 나면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다. 창작자의 자유도 폭넓게 보장받는 편”이라고 전했다.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선보이면서 “다른 채널에서 만들어졌다면 절대 세상밖에 나올 수 없던 작품이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서 난관 없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해외 OTT만이 아니라 국내 브라운관도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제작비 500억원으로 화제를 모은 ‘아스달 연대기’를 비롯해 드라마 규모가 이젠 영화 제작비를 웃도는 일도 있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시도해 볼 환경이 조성됐다. 장르물에 특화된 채널 OCN의 ‘드라마틱 시네마’ 프로젝트처럼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를 이어보려는 시도도 활기를 띠고 있다.
영화 제작진과 협업하는 이 프로젝트는 ‘트랩’ ‘타인은 지옥이다’ ‘번외수사’ 등 기존 브라운관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무게감 있는 장르물들을 선보여 왔다. 앞서 영화 ‘시간 위의 집’ ‘무서운 이야기’를 선보였던 임대웅 감독도 최근 밀리터리 스릴러물 ‘써치’를 선보였다. 임 감독은 “영화보다 긴 서사를 가진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틱 시네마’는 영화와 드라마의 가교 구실을 하는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잔뼈 굵은 각 분야 제작진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완성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영화감독들에게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관습으로 자리매김했던 ‘쪽대본’ 촬영이나 밤샘 촬영이 많이 사라지는 등 제작환경이 개선됐다는 것도 매력적인 요소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영화사들도 드라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앞서 KBS 2TV ‘태양의 후예’를 흥행시킨 영화 투자배급사 뉴는 스튜디오앤뉴를 설립해 JTBC ‘보좌관’ 등을 제작했고 쇼박스도 첫 드라마 JTBC ‘이태원클라쓰’를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