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고검장 및 지검장들이 26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조치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집단 성명을 냈다. 일선 검찰청에서는 7년 만에 평검사회의가 잇따라 열리는 등 검사들의 집단행동인 ‘검란(檢亂)’이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고검장, 지검장 등 간부들과 평검사들이 한 목소리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조상철 서울고검장, 장영수 대구고검장 등 일선 고검장 6명은 이날 오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명령을 재고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황철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고기영 법무부 차관, 조남관 대검 차장(총장 권한대행)을 제외한 일선 고검장 전원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특정 사건 수사 과정에서 총장의 지휘 감독과 판단을 문제 삼아 직책을 박탈하려는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지적했다. 고검장 성명에는 ‘목소리를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취지의 댓글이 400개가 넘게 달렸다.
검사장 17명도 이날 성명을 내고 추 장관의 조치를 비판했다. 김후곤 서울북부지검장 등은 이프로스에 올린 성명서에서 “검찰개혁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직무배제와 징계 청구를 냉철하게 재고해 바로잡아 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전국 18개 지검 중 3곳을 제외한 15개 지검장 전원 및 김지용 서울고검 차장, 이원석 수원고검 차장이 성명에 동참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이정수 서울남부지검장,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성명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성윤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윤 총장 일가 의혹 수사를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성명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남부지검에서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라임 사건을 수사 중인 점, 서울동부지검에서 추 장관 아들 특혜 의혹을 수사했던 점도 고려됐다고 한다. 윤 총장의 측근인 윤대진 검사장도 성명에 이름을 올리길 원했지만 중립성을 고려해 빠졌다고 한다.
이성윤 지검장은 성명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서울중앙지검에서도 추 장관에 대한 반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검사들은 이날 “직무배제는 충분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이뤄져 절차적 정의에 반하고 검찰 개혁 정신에도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서울동부지검, 의정부지검, 광주지검, 대전지검, 천안지청, 춘천지검 및 소속 지청(원주·강릉·영월·속초) 평검사들도 집단행동에 나섰다.
검사들은 성명서에서 공통적으로 추 장관의 직무배제가 사실상 윤 총장 찍어내기를 목표로 이뤄진 것이라 위법·부당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성급하고 무리한 징계 청구가 이뤄져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이 침해됐다는 것이다. 검사들의 집단 반발은 전날 부산지검 동부지청 소속 평검사 등이 성명을 내면서 시작됐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아직 올라갈 자리가 남은 검사장급 간부들이 비판 성명에 동참한 것에 대해 고무적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윤 총장 측 변호사는 이날 서울행정법원에 직무배제를 취소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일방적인 징계청구와 직무배제는 사실상 총장의 임기제를 부인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총장 측은 판사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공개된 자료를 취합한 것’이라며 문건 내용도 일부 공개했다.
나성원 허경구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