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승소했던 ‘메르스 80번 환자’… 2심은 “국가 책임 無”

입력 2020-11-26 16:55

‘국내 마지막 메르스 환자’의 유족에게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판사 손철우)는 26일 메르스 ‘80번 환자’ 김모씨의 유족이 국가와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정부가 패소했던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 측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국내 마지막 메르스 환자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투병한 메르스 환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2015년 5월 27일 기저질환인 림프종 암의 추적 관찰치료를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했다가 감염됐다. 그는 삼성병원에 3일간 머무는 동안 ‘슈퍼 전파자’로 불린 ‘14번 환자’를 통해 감염됐다. 14번 환자는 앞서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에게 감염된 뒤 삼성서울병원에서 81명을 추가 감염시켰다. 김씨는 그해 6월 2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뒤 172일 만에 사망했다.

김씨 유족 측은 국가(질병관리본부)가 초동 역학조사를 부실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서울병원은 14번 환자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서울대병원은 김씨의 감염력이 매우 낮았는데도 격리해제를 하지 않아 기저질환을 적기에 치료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정부가 김씨 부인에게 1200만원, 아들에게 80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1심은 질병관리본부 공무원들이 1번 환자에 대한 진단검사를 지연했고, 역학조사를 부실하게 한 과실로 김씨가 메르스에 감염됐다며 국가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다만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과 정부 측은 각각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질병관리본부 공무원의 과실과 김씨의 메르스 감염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4번 환자는 2015년 5월 15~17일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로부터 감염됐고,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5월 18일 1번 환자를 메르스 의심환자로 신고했다. 질병관리본부가 1번 환자에 대한 메르스 진단 및 역학조사를 최대한 빨리 했더라도 14번 환자 접촉 시점보다 앞설 수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항소심은 “1번 환자에 대한 메르스 진단 및 역학조사가 적기에 이뤄졌어도, 14번 환자에 의한 김씨의 감염이 차단되거나 14번 환자의 감염을 예방할 수 없었다”고 봤다.

아울러 항소심은 “김씨는 5월 27~29일 사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 환자에게서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4번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와 메르스 확진 판정은 그 이후에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질병관리본부 공무원들이 14번 환자에 대한 충분한 역학조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김씨에게 메르스 조기진단 및 치료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