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 지속가능할까” 역학조사관들의 쓰라린 고백

입력 2020-11-26 15:08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이 검체 검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역학조사관들이 확진자 동선 공개를 두고 “아무도 행복한 사람이 없다”고 호소했다. 확산세를 차단하기 위해 인권보다 방역에 방점을 찍던 국내 현실을 냉정하게 비판한 것이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은 26일 경기도 지역 역학조사관 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초점집단면접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7일까지 진행한 집단 면접 결과 역학조사관들이 심각한 피로감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서적 탈진은 물론 울분 수준이 ‘심각’상태인 이들도 4명 중 1명에 달했다.

역학조사관은 감염병에 걸린 사람을 찾고 동선을 파악하며 그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사관들은 전반적으로 과잉노동이 부른 피로감을 호소했다. 특히 “잘 때마다 역학조사 하는 꿈을 꾼다”는 응답은 정신적 어려움을 여실히 드러내는 말이었다. 이 밖에도 역학조사 업무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지 않아 유선 심층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거나, 역학조사용 핸드폰이 지급되지 않아 개인 휴대전화를 써 번호가 노출된 사례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선 공개를 바탕으로 한 ‘K-방역’의 지속성에 대한 회의감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조사관은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은 동선 공개와 관련 “확진자 동선과 겹쳐도 감염 위험자는 걸러내 검사하고 방역도 마쳐 가게 운영을 재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선 공개는 필요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동선 공개로 시민들은 더 불안해지고 업장 사람들은 피해를 보는데, 결국 동선공개로 행복한 사람이 없다”고 강조했다.


개인정보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한 조사관은 “지자체에서는 (선제 노력을) 자랑해야 하니까 동선 공개를 많이 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줄이면 피해가 줄지 않겠냐”고 했다. 동선 공개가 지자체나 단체장의 치적으로 변질돼 갈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정치적·행정적·경제적 이유로 정치인들이 역학조사관의 결정에 개입하려 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 조사관은 “역학조사와 확진자 발표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선제적으로 많이 (검사)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재촉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국내 방역 성과가 비교적 훌륭하고 역학조사관으로서 보람을 느끼지만, K-방역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든다”는 응답도 다수였다. 이들은 “보건 인력을 갈아 넣어서 만든 K-방역이 성공적이라는 견해에는 회의감이 든다”며“"앞으로 이런 난이 있을 때 헌신한 사람들을 이렇게 대우한다면 다음에 누가 또 지원할지 모르겠다”고 정부를 꼬집었다.

유 교수는 “불 끄기 급급한 위기 대응에서 유연하고 장기적인 체제로 전환하려면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대응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