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북한 달래기 위해 한국과 군사훈련 연기”
“북한 핵시설, 찾기 힘든 곳 있다” 대북 선제공격 반대
“비핵화 해법은 혹독한 국제사회 압력…중국 역할 중요”
내년 1월 출범할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첫 외교수장으로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이 23일(현지시간) 지명됐다. 블링컨 지명자가 어떤 대북정책을 펼칠지에 대해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된다.
블링컨 지명자는 베테랑 외교관 출신답게 대북 원칙주의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아무런 준비 없이 세 차례 무의미한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비판했다. 블링컨 지명자는 또 김정은 위원장을 ‘세계 최악의 독재자들 중 한 명(one of the world's worst tyrants)’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블링컨 지명자는 대북 선제공격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북한 비핵화의 해법으로 국제사회의 지속적이고 혹독한 경제적 압박을 제시했으며, 여기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블링컨 지명자가 과거 미국 언론들과 가졌던 인터뷰와 미국 언론에 보냈던 기고문은 그가 어떤 대북정책을 내세울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김정은, 세계 최악의 독재자들 중 한 명”(지난 9월)
블링컨 지명자는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외교 참모 자격으로 지난 9월 25일 미국 CBS방송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블링컨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던 사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블링컨은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우리의 목표는 명확하다”면서 “한반도에선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블링컨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동맹들과 우방국들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매우 똑똑하고, 힘든 외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블링컨은 “우리는 (북한에) 과장된 위협을 쏟다가 ‘세계 최악의 독재자들 중 한 명’과 ‘러브레터’를 교환하는 것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돌린 대통령(트럼프)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는 김정은과 아무런 준비 없이 세 차례 무의미한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비난했다.
블링컨은 “(트럼프가 강조한) ‘거래의 기술’은 김정은에게 유리한 ‘절도의 기술’로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세계 최악의 독재자들 중 한 명이 미국 대통령과 세계 무대에서 동등한 위치에 섰다”고 비판했다.
블링컨은 이어 “그들(북한)을 달래기 위해 동맹(한국)들과 군사훈련을 연기하고, 경제 압박의 페달에서 발을 뗐다”면서 “우리는 아예 없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이 인터뷰를 보면, 블링컨 지명자는 북·미 정상 간 담판식 협상 방식에서 탈피해 실무협상부터 정상회담까지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오는 북·미 대화를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재개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에 더욱 치중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한에 대한 신속한 군사적 해결책은 없다”(2017년 3월)
블링컨이 트럼프 행정부 1년 차였던 2017년 3월 15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선 대북 선제공격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 글은 렉스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의 첫 방한을 앞둔 시점에 게재됐다.
블링컨은 이 글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해 “신속한 군사적 해결책(quick military fix)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북한의 많은 핵 시설이 지하나 산속 또는 미국 정보기관이 탐지하기 어려운 곳에 감춰져 있다”고 주장했다. 블링컨은 또 “북한은 비밀리에 숨어있거나 몇 분 내에 발사가 가능한 고체 로켓 연료 주입 방식의 이동식 미사일에서 급격한 발전을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블링컨은 그러면서 “(북한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기껏해야 방해하거나 연기할 수 있을 뿐 파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믿고 있다”고 주장했다.
블링컨은 “만약 우리가 효과적인 (대북) 선제공격 능력이 있더라도 그것의 결과를 고려하면 엄두를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서울에서 불과 30마일(48㎞) 떨어진 곳에 대포 수천 문을 배치했다”면서 “단 한 차례의 (북한의) 보복 공격도 한국의 수도(서울)에 거대한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블링컨은 그러면서 “해답은 미국과 한국·일본·중국이 이끄는 포괄적이고, 지속적이며 혹독한 국제사회의 압력”이라고 주장했다.
블링컨은 중국의 역할을 크게 강조했다. “북한의 최대 교역국이자 투자 파트너인 중국이 북한 수출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석탄에 대해 금수 조치 등을 취하면서 김 위원장의 핵 개발 돈줄을 차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