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베이징] 시진핑 “CPTPP도 가입”… 중국이 다자주의 리더로?

입력 2020-11-22 17:30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화상으로 열린 제27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경제지도자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주 연이어 개최된 화상 정상회의에서 두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다자주의’와 ‘개방’이다. 시 주석은 지난 17일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정상회의 때 미국을 겨냥해 내정 간섭과 일방적 제재에 반대한다는 작심 발언을 했다. 이어 2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국이 주도했다 탈퇴한 경제협정에 가입하는 문제를 적극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튿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선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국제 협력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그간 대미 외교 전략의 하나로 다자주의를 활용해왔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중국을 압박했던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한 수사적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보다 공세적이다. 코로나19 확산과 대선 후유증으로 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는 사이 중국은 다자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우군 확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아·태 운명공동체, CPTPP 가입 적극 고려”
시 주석 연설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후속 버전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가능성을 시사한 대목이다.

그는 “APEC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2020년 이후 장기적인 협력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우리를 이를 시작점으로 개방과 포용, 협력과 공영의 아태 운명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CPTPP에 가입할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포괄적이고 점진적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국 현황. 국민일보DB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취임하자마자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 12개국이 참여한 TPP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후 일본 주도로 나머지 11개 국가가 CPTPP를 구성해 2018년 12월 협정이 발효됐지만 미국이 빠지면서 효과가 반감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중국은 한·중·일 3개국과 아세안 10개국, 호주, 뉴질랜드가 가세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자신들이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더해 CPTPP 가입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이는 중국의 개방 의지를 과시하면서 동시에 미국 새 정부와의 협력 기회를 찾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 관변 매체와 학자들은 한목소리로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을 모색하려는 과감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CPTPP 체결국 인구수는 4억9800만명,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경제의 13% 수준으로 RCEP보다 규모가 작다. 그러나 첨단기술, 지적재산권, 디지털 경제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왕후이야오 중국세계화센터 대표는 22일 글로벌타임스 인터뷰에서 “CPTPP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을 상징한다”며 “이런 협정에 중국이 동참하려는 의지는 더 깊고 높은 수준의 개방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리하이둥 중국외교대 교수도 “중국이 세계 최대 개발도상국이라는 위상과 역내 성장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CPTPP에서 주역이 될 것”이라며 “이는 역내 운명공동체 건설을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화상으로 진행됐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격돌하는 자리여서 관심을 모았다. 지난 3일 미 대선 이후 공개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이후 처음으로 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번영 증진과 경제 회복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내용의 연설을 했지만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중국 매체들은 이런 분위기를 두고 “올해 APEC 회의 주인공은 트럼프가 아닌 시진핑”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내년 1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이 TPP에 복귀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바이든 당선인은 부통령 시절 TPP 추진에 적극적이었다. 양쩌루이 중국태평양경제협력전국위원회 연구소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취한 보호무역주의 여파로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다음 정부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 확실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미국과 중국이 CPTPP 문제를 놓고 대화한다면 양국이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생기는 것”이라며 “이는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중국 내부에선 화웨이와 틱톡 등 중국의 기술 산업과 디지털 경제에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감도 흘러나온다.

바이든, 中주도 무역질서 견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 시어터' 극장에서 경제자문단으로부터 화상 브리핑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이 미국 없는 CPTPP에 가입 신호를 보내긴 했지만 하루아침에 성사될 일은 아니다. 중국이 협정 회원국이 될 자격을 갖췄는지, 기존 회원국들이 중국의 참여를 수용할 것인지 등 실제 협상이 시작된다면 거쳐야 할 관문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중국이 지적재산권, 데이터 이전, 환경보호, 국영기업 개혁 분야에서 CPTPP 기준에 근접했다고 주장하지만 회원국 내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양 연구소장은 중국이 CPTPP 가입 요건을 충족한다고 하더라도 “협정에 가입하기까지는 5~10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전략이 관건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최근 중국이 참여한 RCEP 체결과 관련해 미국을 필두로 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협력해 무역 질서의 규칙을 설정해야 한다고 견제 심리를 드러냈다. 중국 상무부 국제시장연구소의 바이밍 부소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를 통해 중국을 밀어내거나 중국에 가혹한 조건을 내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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