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미성년자와 성관계, 거부 없었어도 ‘성적 학대’”

입력 2020-11-22 15:22

성인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미성년자가 거부를 하지 않았더라도 성적 학대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10월 당시 만 15인 B양과 성관계를 해 B양을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같은 해 10월부터 12월까지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신체 노출 사진을 유포하겠다며 C양을 협박한 혐의도 받는다. 그는 페이스북에 본인 명의의 계정을 비롯한 3개의 계정을 만들고 나이 어린 여성들에게 접근해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노출 사진 등을 전송받고 이를 빌미로 성관계를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피해자가 미숙하나마 자발적인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연령대로 보인다”며 성적 학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협박을 간음행위에 사용하려는 고의를 가지고 있었다거나 협박이 간음행위 수단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폭행 등에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우선 B양과의 성관계와 관련해 명시적 반대 의사가 없더라도 성적 학대행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성적 가치관과 판단 능력을 갖췄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잘못”이라고 했다.

A씨가 C양의 신체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에 대해서도 “A씨가 피해자를 협박해 간음행위에 사용하려는 고의가 있었고, 위 협박이 간음행위의 수단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