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은 자유 의지… 담배-질환 인과관계도 단정 어렵다”

입력 2020-11-20 11:30 수정 2020-11-20 11:31
흡연 경고그림과 문구가 표시된 담뱃갑들. 사진=뉴시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들의 결함과 불법행위로 흡연자들에게 소세포암 등이 발병했다며 533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담배에 설계상, 표시상의 결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흡연과 소세포함 등 질환 간 인과관계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소송 제기 6년 만에 1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아든 공단 측은 항소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부장판사 홍기찬)는 20일 건보공단이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3465명의 흡연자가 폐암 중 소세포암, 편평세포암 등을 앓아 533억원대 금액을 보험급여 비용(공단 부담금) 명목으로 지출했지만, 이들에게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담배회사의 불법행위를 인정하기 어렵고, 흡연과 질병 간 인과관계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담배회사가 니코틴이나 타르를 완전히 제거하거나 줄이는 방법을 택하지 않은 점 자체가 ‘설계상 결함’은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담배의 맛과 향은 니코틴과 타르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데, 흡연자가 스스로 기호에 따라 선택한다는 점을 고려한 판단이다. 니코틴을 제거하면 흡연자가 원하는 안정감 등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점, 흡연자가 중독되지 않을 정도의 니코틴 수준을 설정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재판부의 판단에 고려됐다.

담배에 대한 경고 설명 등을 둘러싼 ‘표시상 결함’ 쟁점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내용,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표시문구가 이미 담뱃갑에 표시돼 있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와 법적 규제 등으로 흡연이 해롭다는 인식은 사회 전반적으로 널리 인식돼 있다고도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무엇보다도 흡연을 시작하고 계속하는 문제는 각자의 자유 의지라고 봤다.

흡연과 소세포암 등 질병의 인과관계는 이번에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 대상자인 3465명이 20갑년 이상의 흡연력을 가지고 있고 질병을 인정받았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 자체로서 양자 간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논리는 결국 2013년 대법원이 선고했던 것과 동일한 내용이기도 하다. 인과관계 인정을 위해서는 발병 시기, 위험 인자에 노출되기 전의 건강 상태, 생활 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이 추가로 증명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태도다.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과 질병 간의 상관성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인정받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 개인이나 집단의 승소 사례는 없다. 6년간 진행된 이번 ‘담배소송’이 큰 관심을 받았지만 새로운 판단이 제시되진 않았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선고 직후 기자들을 만나 “담배의 명백한 피해에 대해 법률적인 인정을 받으려는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은 길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구승은 송경모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