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소수의 사람에게 전달된 사실이라도 다수에게 퍼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이 성립된다는 기존 법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9일 명예훼손·상해·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8년 마을 주민 B씨의 집 뒷길에서 “저것이 징역 살다 온 전과자다. 전과자가 늙은 부모 피를 빨아먹고 내려온 놈이다”라고 큰소리로 외쳐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현장에는 A씨의 남편 추모씨와 B씨의 친척 이모씨만 있었다.
1심은 “피고인의 발언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며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했다. A씨는 다른 혐의도 유죄로 판단돼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A씨는 항소심에서 “추씨는 B씨가 전과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남편이며, 이씨는 B씨의 친척이므로 전파가능성이 없다”고 항변했다. 말이 옮겨질 가능성이 없으니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다만 항소심은 여전히 A씨 발언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며 명예훼손을 유죄로 봤고, 폭행 혐의는 공소기각 판단해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68년 정립된 명예훼손의 ‘전파가능성’ 법리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비밀이 잘 보장돼 외부에 전파될 염려가 없는 경우가 아니면 비록 한 사람에 대해 사실을 유포했어도 외부에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이상 공연성이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다수의견을 낸 10명의 대법관은 “명예훼손죄는 명예를 훼손할 위험성이 발생한 것으로 족한 이상, 소수의 사람에게 발언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초래한 경우에도 공연히 발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기존과 같이 1명에게 말한 사실이라도 전파 가능성이 있으면 명예훼손이 성립된다는 법리를 유효하게 판단한 것이다.
특히 다수의견은 정보통신망이 발달한 오늘날의 현실을 강조했다. 다수의견은 “현재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대부분 의사표현이 이뤄지고, 이를 이용한 명예훼손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상대방이 직접 인식해야 한다거나 특정 소수 상대방으로는 공연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법리를 내세운다면 해결기준으로 기능하기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재형·안철상·김선수 대법관은 “전파가능성 법리는 명예훼손의 가벌성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한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전파가능성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기 어렵다”며 “구체적인 적용에 자의가 개입될 소지가 크고 외국의 입법 추세와도 동떨어졌다”고 다수의견을 비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