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피해자”… ‘프듀’ 수혜자 공개 안 한 이유

입력 2020-11-19 06:00
투표 조작으로 탈락한 강동호(왼쪽)와 이가은. 엠넷 제공

엠넷 ‘프로듀스’ 시리즈에서 투표 조작으로 피해를 본 연습생 18인의 명단이 공개됐다. 재판부는 “피해 연습생이 밝혀져야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할 수 있다”며 공개를 선택했다. 다만 수혜를 입은 연습생은 비공개 조치했다. 이들이 순위 조작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희생양이 될 위험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18일 열린 CJ ENM 소속 안준영 PD와 김용범 CP 등 항소심에서 원심을 유지하고 업무방해 및 사기 혐의를 물어 각각 징역 2년, 1년 8개월을 선고했다. 이중 안 PD는 시청자 문자 투표를 조작하는 대가로 기획사로부터 유흥업소 접대를 받아 배임수재·청탁금지법 위반까지 더해져 추징금 3700여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날 프로듀스 시리즈의 피해 연습생 18인의 명단을 공개하고 피해보상을 촉구했다. 1심 당시에는 피해 연습생과 관련한 모든 정보가 가려졌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명단 공개를 단행하면서 피해 보상 및 명예 회복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이틀 전 이미 최종선발 멤버를 정해놓고도 문자 투표를 해 시청자를 속인 것이 인정된다”며 “방송 프로그램 공정성이 훼손됐고 일부 연습생은 정식 데뷔해 가수가 될 기회를 부당하게 박탈당했다”고 설명했다.

안 PD의 불법 행위로 피해를 본 연습생은 모두 18명으로, 그룹 아이오아이를 배출한 시즌1에서는 김수현·서혜린(1차)이, 그룹 워너원을 만든 시즌2는 성현우(1차)와 강동호(4차)가 피해를 입어 탈락했다. 그룹 아이즈원을 결성한 시즌3은 이가은·한초원(4차)이 투표 조작으로 최종 멤버에 들지 못했다. 이가은은 최종 순위 5위, 한초원은 6위였다.

범행은 회를 거듭할수록 치밀해졌다. 노하우가 생겨 투표 조작에 자신감이 붙은 모양새다. 시즌1은 1차 투표를 조작했고, 시즌2는 최종에서 1명, 시즌3은 최종에서 2명을 바꿔치기했는데, 시즌4에 들어서는 6명의 투표수를 조작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최종에서만 3명이다. 그룹 엑스원을 모은 시즌4는 앙자르디 디모데(1차), 김국헌·이진우(3차), 구정모·이진혁·금동현(4차)가 피해를 입었다. 최종 투표에서 구정모가 6위, 이진혁이 7위, 금동현이 8위였다.

특히 4차 투표는 데뷔와 직결되는 만큼 이 과정에서 6명이나 탈락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요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엠넷은 “사건 발생 후부터 자체적으로 피해 연습생들을 파악하고 보상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다”며 “일부는 피해 보상이 완료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CJ ENM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제작진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높다.

최종 투표에서 조작으로 탈락한 강동호의 소속사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는 “피해를 받은 사실이 늦었지만 밝혀져 다행”이라며 “아직 피해 보상 관련 연락을 받지 못했지만 조치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다른 피해 연습생들의 소속사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피해자 만큼의 수혜자가 있는 사건이라 공식 입장을 내놓기 부담스럽고, 엠넷 측과 보상 관련 협의를 앞두고 있어 말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혜를 입은 연습생 명단은 함구했다. 재판부는 “해당 연습생은 순위 조작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순위 조작을 빌미로 연예기획사에 예속되는 등 이들 역시 피해자로 볼 측면이 있고, 피고인들을 대신해 희생양이 될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다. 또 “이번 재판은 순위를 조작한 피고인들을 단죄하려는 목적”이라며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믿고 최선을 다한 연습생들을 단죄하는 재판이 아니므로 다른 억울한 피해가 없도록 유의해달라”라고 당부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