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개봉한 ‘애비규환’에서는 그룹 에프엑스 출신 배우 정수정(크리스탈)의 변신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생 토일(정수정)이 연하의 애인 호훈과 사랑해 임신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에서 그는 기존의 도회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진다. 후줄근한 티셔츠에 머리 질끈 묶고 당차게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모습이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빛나는 건 정수정이 장혜진 등 베테랑들과 빚어내는 끈끈한 호흡과 호연이다.
최근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막론하고 아이돌 출신 연기자, 이른바 ‘연기돌’ 약진이 두드러진다. 과거 종종 연기력 논란의 대상이 됐던 아이돌 출신 배우들과 요즘은 결이 조금 다르다. 지금의 연기돌들은 안정적인 연기력은 물론 팬덤 인기까지 갖춘 흥행 블루칩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같은 연기돌의 발굴과 활약은 최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 플랫폼 유행으로 콘텐츠 공급이 폭발한 콘텐츠 시장 변화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 영화·드라마를 종횡무진하는 연기돌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이 중 하나가 그룹 워너원 출신 옹성우다. 지난해 첫 주연작 JTBC ‘열여덟의 순간’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그는 현재 방영 중인 같은 방송사 드라마 ‘경우의 수’에서도 주인공으로 풋풋한 청춘 로맨스를 선보이고 있다. 내친김에 뮤지컬 영화까지 도전한 그는 12월 개봉을 앞둔 류승룡 염정아 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첫사랑 역으로 활약한다. 첫 브라운관 데뷔부터 스크린 데뷔까지 불과 1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EXID 출신 안희연(하니)도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가고 있다. 올해 초 1020 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웹드라마 ‘엑스엑스’(XX)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은 그는 MBC와 영화감독들이 협업한 ‘SF8’에서 단편 ‘하얀까마귀’ 주연을 맡아 극을 이끌었다. 내년 상반기에는 그의 첫 스크린 데뷔작 ‘어른들은 몰라요’가 개봉할 예정이다. 10대 임산부 세진(이유미)이 유산을 위해 동갑내기 친구들과 짬짜미 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에서 안희연은 10대 비행소녀 역으로 파격적인 연기를 펼친다. 특히 앞서 10대 가출청소년들의 현실을 소묘해 큰 화제를 모은 독립영화 ‘박화영’ 이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는 앞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호평받았다.
사실 잠깐만 일별하더라도 웹드라마 ‘연애혁명’의 워너원 출신 박지훈, 12월 방영되는 tvN ‘여신강림’의 아스트로 차은우, OCN ‘경이로운 소문’의 구구단 김세정 등 가수만이 아니라 배우로서도 활약하는 연기돌들이 부지기수다.
방송계 안팎에서는 연기돌의 약진이 매해 100편이 넘게 쏟아지는 브라운관 시장에 OTT까지 더해지며 폭발적으로 커진 콘텐츠 시장이 영향을 끼친 결과로 풀이하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연기돌의 호연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얼굴을 비출 작품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오랜 호흡을 가지고 연기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다.
특히 팬덤의 인기를 고스란히 스크린과 브라운관으로 가져올 수 있는 아이돌 출신 배우들은 흥행 보증 수표로 여겨지고 았다. 모두 청춘스타라는 점에서 최근 다양한 연령대 배우를 원하는 콘텐츠 시장 분위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여러 작품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최근 인기와 재능을 두루 갖춘 아이돌 출신 배우들을 기용하는 것은 분명한 이점이 있다”며 “청춘물 등 여러 장르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것도 이들의 큰 장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