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헌법 통과 직후 첫 대학 관련 공안사건인 ‘고려대 NH회’ 사건에 연루돼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노중선(80)씨가 46년 만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는 과거 “모택동식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라”고 내란을 선동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법원은 재심에서 “불법 체포·감금과 고문이 있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부장판사 김창형)는 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실형을 받았던 노씨의 재심에서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노씨는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선포한 이후 고려대NH회 사건에 연루돼 1973년 6월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그해 11월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듬해 이를 확정했다.
중앙정보부는 노씨가 1967년부터 남조선해방전략당 간부들과 연루돼 반국가단체 활동을 했다고 봤다. 그는 당시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의 간사였다. 공소장에는 노씨가 1972년 6월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기도하면서 고려대 학생들을 탄광의 노동운동에 침투시켰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해 12월 여러 인물들과 공모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노동자, 농민과 연합전선을 형성한 다음 현 정부를 타도하고 모택동식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라”고 역설해 내란을 선동했다는 내용도 적혔다.
노씨 측은 재심에서 “고려대NH회 사건은 경찰과 중앙정보부의 불법 체포와 감금,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며 “알고 지내던 고려대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가고 싶다고 해서 도와줬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 만으론 피고인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거나 내란을 선동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자백이 적힌 당시 경찰 피의자신문조서와 진술서는 모두 위법수집증거로 효력이 없다고 봤다. 중정 수사관들이 노씨를 영장 없이 강제 연행했고, 구속영장이 나오기 전까지 불법 구금 상태에서 구타·고문 등 가혹행위를 하면서 자백을 받아냈다는 이유였다.
검찰 피신조서와 진술서도 마찬가지로 판단했다. 노씨는 재심에서 중정 수사관들이 검찰청까지 와서 자신을 아는 체하고 조사내용을 듣고 있었고, 신문조서 내용대로 진술하지 않고 부인하면 다시 중정으로 끌려가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를 인정해 “비록 검사 앞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한 일이 없더라도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된 상태에서 자백한 것으로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