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심화 우려… 트럼프 수사가 ‘블랙홀’ 될 수도
법무부 독립성 중요… ‘수사 금지’ 명령도 안할 듯
트럼프 수사 여부… 결국엔 새로운 법무장관 손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 문제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월 20일 퇴임하면 그동안 미국 대통령으로서 가졌던 민형사상 면책특권을 상실한다.
바이든 당선인은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통합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법무부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 ‘트럼프 수사 금지’와 같은 가이드라인을 내리기도 원치 않는다고 NBC방송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참모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은밀하게 말했다고 NBC방송이 5명의 익명 관계자들을 인용해 전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 수사’를 원치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통합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수사가 가뜩이나 둘로 갈라져 있는 미국을 더욱 분열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3일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찍은 미국의 유권자들이 7300만명이 넘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 수사가 진행될 경우 이들의 반발과 불만이 높아질 수 있는 상황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수사가 모든 이슈를 잡아먹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경제 회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처, 인종 평등과 기후변화 등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트럼프 수사로 인해 대통령 취임 초기,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동력을 상실하고 시간만 허비할 수 있다는 근심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 수사를 금지하는 지시나 명령을 내릴 생각은 없다고 NBC방송은 보도했다. 이 지점에서 바이든 당선인의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법무부가 독립적으로 기능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 참모들의 전언이다. 법무부가 백악관 등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참모들은 NBC방송에 “바이든 당선인은 또 수사당국자들에게 누구나 무슨 사건에 대해 수사하라거나 수사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참모는 “바이든 당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법무부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법무부를 정치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내내 법무부 수사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리 가겠다는 것이 바이든 당선인의 의중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기소할지 여부에 관한 결정권을 새로운 법무장관에게 넘길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바이든 당선인이 어떤 인물을 법무장관으로 기용하느냐가 중대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인이 미지근한 태도를 취할 경우 트럼프 수사를 요구하는 일부 지지층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나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올 경우 수사 받을 수 있는 사안은 한둘이 아니다. 자신이 운영했던 트럼프 그룹의 탈세·금융사기 의혹,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성관계를 폭로했던 여성들에게 ‘입막음용’ 돈을 줬다는 의혹 등이 있다.
또 2016년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 당시 후보의 승리를 위해 공모·내통했다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다시 불붙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 펼쳤던 정책이 수사의 칼날을 맞을 수 있다. 불법 이민자들의 부모와 자녀를 분리해 수용했던 정책이 대표적이다. 현재까지 드러나지 않은 사건에 대한 새로운 고소·고발이 줄을 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자신에 대해 ‘셀프 사면’을 내릴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셀프 사면을 내려도 연방 범죄를 어긴 경우는 보호받을 수 있지만, 지방정부 검찰청의 수사 칼날까지는 피하지 못한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